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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홍수 이야기와 메소포타미아 홍수 전승 — 1872년 해독 이후 무엇이 확정되고 무엇이 미결로 남았는가

성경보다 앞선 점토판에 방주와 새를 날려 보내는 장면이 들어 있다는 사실은 150년 전에 확인되었다. 확정된 것은 문헌 사이의 대응이고, 확정되지 않은 것은 차용의 경로다. 그 사이를 메우려고 동원된 지질학 가설들은 각각 다른 이유로 멈춰 섰다.

2026년 9월 12일

1872년 12월 3일 런던에서 열린 성서고고학회 모임에 영국 총리 윌리엄 글래드스턴과 캔터베리 대주교 아치볼드 캠벨 테이트가 앉아 있었다. 학회 발표를 들으러 온 자리였다. 발표자는 대영박물관에서 점토판 조각을 맞추는 일을 하던 조지 스미스였고, 발표문 제목은 「칼데아의 대홍수 기록」이었다.

스미스가 읽어 낸 것은 니네베에서 실려 온 점토판 조각에 적힌 홍수 이야기였다. 배가 산에 멈추고, 새를 날려 보냈으나 앉을 곳을 찾지 못해 돌아오는 장면이 거기 있었다. 그는 발표문을 이듬해 학회지에 실었고, 『데일리 텔레그래프』가 비용을 대어 니네베로 보낸 발굴에서 빠진 조각을 더 찾았다. 이 점토판은 뒤에 길가메시 서사시 12토판 가운데 제11토판으로 밝혀진다.

총리와 대주교가 학회 발표에 참석한 이유는 분명했다. 성경의 홍수 이야기가 성경 바깥의, 그것도 더 오래된 문헌에 들어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가 즉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물음은 지금도 같은 자리에 있다. 이 글은 150년 동안 무엇이 확정되었고 무엇이 확정되지 않았는지를 갈라 본다.

홍수 전승은 세 갈래 판본으로 확보되어 있다

스미스가 읽은 것은 하나의 판본이었다. 이후 발굴과 해독으로 계열이 늘었다.

세 계열 수메르어 판본에서 홍수를 겪고 살아남는 인물의 이름은 지우수드라다. 아카드어 서사시 『아트라하시스』에서는 아트라하시스이고, 길가메시 서사시 제11토판에서는 우트나피슈팀이다. 세 이름은 각각 다른 언어와 시기의 판본에 속하며, 줄거리의 뼈대는 공유하되 세부가 다르다. 길가메시 제11토판의 홍수 대목은 아트라하시스에서 가져와 끼워 넣은 것으로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세 계열이 공유하는 뼈대는 이렇다. 신들이 인류를 쓸어버리기로 결정한다. 신들 가운데 하나가 특정 인물에게만 미리 알린다. 그는 배를 만들고 가족과 가축을 태운다. 폭풍이 여러 날 이어지고 물이 세상을 덮는다. 배가 산에 걸린다. 새를 내보내 물이 빠졌는지 확인한다. 내려와서 제사를 드린다. 신이 그 냄새를 맡는다. 살아남은 자에게 특별한 지위가 주어진다.

창세기 6장부터 9장까지의 줄거리가 이 뼈대와 항목별로 맞물린다. 배의 규격이 지정되고, 역청을 칠하고, 가족과 짐승을 태우고, 물이 세상을 덮고, 배가 산에 멈추고, 새를 내보내고, 제사를 드리고, 신이 그 향기를 맡고,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 나온다.

새를 내보내는 장면은 특히 우연으로 보기 어렵다. 물이 빠졌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두 전승 모두 새를 여러 차례 내보내는 방식을 택한다. 다만 새의 종류와 순서는 다르다. 창세기는 먼저 까마귀를 내보내고 그다음 비둘기를 세 번 내보낸다. 아카드어 판본은 비둘기와 제비와 까마귀를 차례로 내보낸다. 산 이름도 다르다. 창세기는 아라랏 산들이라 하고, 아카드어 판본은 니시르 산이라 한다.

홍수의 이유가 갈린다

겹침만큼 중요한 것이 차이다. 가장 큰 차이는 신들이 인류를 없애기로 한 이유에 있다.

『아트라하시스』의 서두는 인간 창조 이전부터 시작한다. 하급 신들이 운하를 파는 노역에 반발하자 신들은 그 일을 대신할 존재로 인간을 만든다. 그런데 인간이 불어나면서 소란이 커지고, 최고신 엔릴은 그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엔릴은 역병을 보내고, 그다음 가뭄과 기근을 보내고, 그래도 인간이 줄지 않자 마지막으로 홍수를 결정한다. 인간의 잘못은 수가 많고 시끄럽다는 데 있다.

창세기의 이유는 다르다. 6장 5절은 사람이 마음에 품는 생각이 언제나 악하다고 적고, 11절과 13절은 땅이 포악함으로 가득 찼다고 적는다. 판정의 근거가 소음에서 폭력으로 바뀐다.

신들 사이의 관계도 다르다. 메소포타미아 판본에서 홍수를 결정한 신과 살아남을 사람에게 경고한 신은 서로 다르다. 엔키 또는 에아가 갈대 담장에 대고 말하는 방식으로 금지를 우회해 경고를 전한다. 신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그 불일치가 구원의 통로가 된다. 창세기에서는 결정하는 신과 경고하는 신이 같다. 노아가 살아남는 이유도 신들의 사정과 무관하게 그가 의롭다는 평가에서 나온다.

홍수가 끝난 뒤의 장면도 성격이 다르다. 아카드어 판본에서 신들은 제사의 향기에 파리처럼 몰려든다. 인간이 없어지면 제물을 받을 수 없다는 사정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창세기의 신은 향기를 맡고 다시는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굶주림이나 의존은 나오지 않는다.

이 차이들이 한 방향을 가리킨다. 신들의 필요와 갈등으로 설명되던 구조가, 인간의 행위에 대한 판정과 한 신의 결정으로 재배치된다. 앞선 글에서 본 창세기 2장과 3장의 변경 방향과 같다.

창세기 홍수 이야기 안에도 두 판본이 겹쳐 있다

비교를 바깥 문헌으로만 할 일은 아니다. 창세기 6장부터 9장까지를 꼼꼼히 읽으면 같은 정보가 두 번, 서로 다르게 나오는 대목이 여럿 있다.

방주에 태울 짐승의 수가 그렇다. 6장 19절과 20절은 모든 생물을 암수 한 쌍씩 태우라고 한다. 그런데 7장 2절과 3절은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한 쌍씩 태우라고 한다. 두 지시가 나란히 놓여 있다.

기간도 그렇다. 7장 12절은 비가 40일 밤낮으로 내렸다고 한다. 7장 24절은 물이 150일 동안 땅에 넘쳤다고 한다. 8장 3절은 150일 뒤에 물이 줄었다고 하고, 8장 6절은 40일 뒤에 노아가 창문을 열었다고 한다. 두 개의 시간표가 겹쳐 있다.

물의 출처도 둘이다. 7장 11절은 깊음의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고 한다. 7장 12절은 비가 내렸다고 한다. 하나는 우주의 물 저장고가 열리는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폭우의 그림이다.

신의 호칭도 갈린다. 어떤 대목은 엘로힘을 쓰고 어떤 대목은 야훼를 쓴다. 성서학의 표준 분석은 이 겹침을 두 자료의 편집으로 설명한다. 제사장 문서 계열과 비제사장 자료 계열이 한 이야기로 합쳐지면서 서로 다른 숫자와 시간표가 나란히 남았다는 설명이다.

이 관찰은 바깥 문헌과의 비교보다 앞선다.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 자체가 단일 저자가 앉아서 한 번에 쓴 글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판본들이 합쳐진 결과라는 점이 본문 표면에서 읽힌다. 그렇다면 메소포타미아 판본과의 관계도 하나의 문서가 다른 하나를 베꼈다는 구도보다 복잡해진다.

우르의 진흙층이 성경의 홍수로 발표되었던 경위

문헌 비교와는 별도로, 물리적 흔적을 찾으려는 작업이 20세기 내내 이어졌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레너드 울리의 우르 발굴이다. 1920년대 말 그는 우르에서 유물이 전혀 없는 두꺼운 진흙층을 만났다. 두께가 여러 미터에 이르렀고, 이 층은 우바이드 시기의 두 토기 단계를 갈라놓았다. 울리는 뒷날 이 퇴적물의 성격을 기술하면서, 유프라테스강이 범람할 때 상류에서 실어 와 남기는 종류의 퇴적물이며 바다에서 오지 않았다고 적었다. 층리가 거의 없다는 점을 들어 한 번에 쌓였다고 판단했다. 여러 차례의 작은 범람으로는 이런 층이 나오지 않는다는 논거였다.

이 발견은 국제 언론에서 성경의 홍수와 연결되어 보도되었다. 그런데 다른 유적에서도 홍수 퇴적층이 나오면서 문제가 생겼다. 키시에서는 세 차례의 홍수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두 번은 기원전 2900년 무렵, 가장 심했던 세 번째는 기원전 2600년 무렵이었고 퇴적 두께는 평균 40센티미터였다. 슈루팍에서는 60센티미터가량의 점토와 모래층이 나왔다. 연대가 서로 맞지 않는다. 같은 사건일 수 없다.

울리가 찾은 층의 성격도 다시 검토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대학 박물관이 100년 가까이 보관해 온 그 진흙의 표본에 열분해 분획 기법을 적용한 최근 연구는, 표본 안 유기물의 방사성탄소 연대가 크게 흩어져 있고 탄소 동위원소 값도 특이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연구자는 이를 지각 변동으로 퇴적물이 빠르게 재이동해 묻혔을 가능성과 연결하고, 중기 홀로세 해수면 상승으로 우르 일대가 기원전 5천년기와 4천년기에 범람하기 쉬운 지역이 되었다고 정리했다.

여기서 정리되는 것은 이렇다. 메소포타미아 저지대에 큰 범람이 반복해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그 범람들이 하나의 사건이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는다.

흑해 범람 가설이 멈춘 자리

1990년대 말에 다른 규모의 가설이 나왔다. 컬럼비아대학의 해양지질학자 윌리엄 라이언과 월터 피트먼은 1998년에 낸 책에서, 빙하기 이후 지중해 수위가 올라가 보스포루스의 육지 장벽을 뚫고 흑해로 쏟아져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그전까지 흑해는 지금보다 110미터가량 낮은 담수호였고, 기원전 5600년 무렵의 이 유입으로 순식간에 지금 높이가 되었다는 구도다. 흑해 바닥의 퇴적물에서 담수 연체동물이 갑자기 사라지고 해수종으로 바뀌는 지점이 근거였다. 두 사람은 이 사건이 근동의 홍수 전승들, 특히 노아 이야기의 바탕이라고 보았다.

반박은 물길의 방향에서 나왔다. 흑해와 동지중해를 잇는 마르마라해 통로를 지진파 탐사와 시추 코어와 방사성탄소 연대와 화석으로 조사한 연구들은, 이 통로에서 물이 처음부터 남쪽으로 흘렀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가설이 요구하는 북쪽으로의 격렬한 유입과 반대 방향이다. 고고학 쪽에서도 흑해 연안에서 그 시기에 대규모 주거지 파괴나 문명 붕괴의 흔적이 충분히 확인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가설에는 별도의 구조적 문제도 있다. 설령 흑해 범람이 사실이더라도 그것이 증명하는 것은 기원전 6천년기 흑해 연안에 큰 사건이 있었다는 것까지다. 그 사건의 기억이 3000년 이상 지나 남쪽으로 1000킬로미터 떨어진 메소포타미아에서 문자로 기록되었다는 경로는 따로 대야 한다. 앞선 글에서 다룬 신석기 전환 기억설과 같은 형태의 공백이다.

확정된 것과 확정되지 않은 것

150년의 결과를 층별로 나누면 이렇다.

문헌 대응은 확정되었다. 성경보다 앞선 시기에 기록된 아카드어와 수메르어 문헌에 방주, 새를 내보내는 확인 절차, 산에 걸린 배, 제사와 신의 반응이 들어 있다. 이 사실은 1872년에 처음 공개된 뒤 지금까지 뒤집힌 적이 없고, 판본이 늘면서 오히려 보강되었다.

차용 경로는 확정되지 않았다. 창세기가 특정 아카드어 문서를 직접 보고 옮겼다는 증거는 없다.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 자체가 두 자료의 편집물이라는 점, 그리고 세 계열의 메소포타미아 판본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 단순한 차용 구도를 어렵게 만든다. 공통 문화권에서 오래 유통되던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졌고 창세기가 그중 한 갈래를 물려받았다는 설명이 현재 가장 넓게 받아들여지지만, 이 설명도 특정 경로를 짚지는 못한다.

물리적 사건은 확정되지 않았다. 메소포타미아 저지대의 반복된 범람은 확인되지만 단일 사건은 확인되지 않았고, 흑해 범람 가설은 물길의 방향이라는 지점에서 반박을 받았다. 두 경우 모두 사건이 있었다는 것과 그 사건이 이 이야기의 기원이라는 것 사이에 다리가 없다.

결론 — 대응은 사실이고, 그 사실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생각보다 적다

정리하면 세 가지다. 성경의 홍수 이야기와 메소포타미아 홍수 전승 사이에 항목별 대응이 있다는 것은 150년째 유지되는 확정 사실이다. 두 전승이 갈라지는 지점은 홍수의 이유와 신들의 관계이며, 창세기는 신들의 필요와 갈등으로 설명되던 구조를 인간의 행위에 대한 판정으로 바꾼다. 물리적 흔적을 찾으려는 시도들은 각각 다른 이유로 멈췄다. 메소포타미아의 범람 퇴적층은 연대가 서로 맞지 않고, 흑해 범람 가설은 물이 흐른 방향이 가설과 반대라는 조사 결과를 만났다.

이 자료 상태에서 양쪽으로 성급하게 나아가는 진술이 있다. 앞선 문헌에 같은 이야기가 있으므로 성경의 기록이 지어낸 것이라는 진술이 하나이고, 여러 문화에 홍수 전승이 있으므로 실제 전 지구적 홍수가 있었다는 진술이 다른 하나다. 앞의 진술은 창세기가 그 문헌들을 베꼈다는 경로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 경로가 확인되지 않았다. 뒤의 진술은 전승의 분포를 사건의 증거로 삼는데, 강 유역에 사는 사람들이 범람을 겪고 그 이야기를 남기는 일은 단일 사건 없이도 여러 곳에서 일어난다.

남는 질문은 문헌 비교가 답할 수 있는 범위 바깥에 있다. 대응하는 이야기를 물려받아 다시 쓴 사람이 무엇을 바꾸었고 왜 바꾸었는지는 본문에서 읽을 수 있다. 그 다시 쓰기가 어떤 권위를 갖는지는 본문 분석이 아니라 각자가 성경을 어떤 종류의 글로 읽는가에서 결정된다. 1872년에 총리와 대주교가 학회에 앉아 있던 이유도 결국 그 질문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