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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논쟁에서 확정된 주장과 확정되지 않은 주장을 가르는 기준 — 자료가 판정할 수 있는 형태인가

같은 본문을 놓고 상반된 재구성이 200년 넘게 공존해 왔다. 그 이유는 어느 쪽 논증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이 분야의 주장 가운데 상당수가 애초에 자료로 판정할 수 없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판정 가능한 주장과 불가능한 주장을 가르지 않으면 논쟁은 진영 싸움이 된다.

2026년 9월 12일

어떤 학문 분야에서 200년 동안 논쟁이 이어진다면 두 가지 중 하나다. 한쪽이 논증을 잘못하고 있거나, 다투는 주장이 자료로 결판나지 않는 종류이거나.

창세기의 성립과 배경을 둘러싼 논쟁은 두 번째에 가깝다. 이 분야에서 쓸 수 있는 자료는 본문 자체와 고대 근동 문헌, 그리고 제한된 고고학 자료가 전부다. 새 점토판이 나오면 판이 조금씩 움직이지만 결정적 판정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주장이 똑같이 미정인 것은 아니다. 지난 250년 동안 몇몇 주장은 실제로 결판이 났고, 몇몇은 결판이 나지 않았으며, 둘 사이에는 구별 가능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세우는 작업이 이 글의 목적이다.

주장에는 세 등급이 있다

창세기를 다루는 글에서 만나는 진술은 세 등급으로 나뉜다. 혼동이 생기는 것은 세 등급이 같은 문장 형태로 적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관찰이다. 본문에 무엇이 적혀 있는가에 관한 진술이며, 원문을 읽을 수 있으면 확인된다. 창세기 6장 19절이 짐승을 둘씩이라 하고 7장 2절이 정결한 짐승을 일곱씩이라 한다는 것, 1장 16절이 해와 달의 이름을 쓰지 않고 광명체라는 낱말을 쓴다는 것, 홍수 기간이 40일과 150일로 함께 적혀 있다는 것이 여기 속한다. 이 등급에서는 진영 간 이견이 없다.

둘째는 가설이다. 관찰을 설명하기 위해 세운 구조물이며, 자료로 지지되거나 약화될 수 있지만 직접 확인되지는 않는다. 네 개의 자료가 있었다는 주장, 제사장 자료가 포로기 이후라는 주장, 창세기 1장이 주변 신화를 겨냥했다는 주장이 여기 속한다.

셋째는 개인 제안이다. 한 연구자가 특정 논문이나 저서에서 제시했고 아직 널리 검토되지 않은 주장이다. 학계의 표준으로 통용되지 않으며, 인용될 때 제안자의 이름이 함께 붙어야 한다.

문제는 인용 단계에서 생긴다. 셋째 등급이 둘째 등급처럼, 둘째가 첫째처럼 인용되면 독자는 확정된 것과 다투어지는 것을 구별할 수 없다. 그러면 결론만 골라 쓰는 관행이 양쪽 진영에서 똑같이 나타난다.

실제로 결판이 난 주장들은 형태가 같다

이 분야에서 결판이 난 사례를 모아 보면 공통점이 드러난다. 모두 셀 수 있거나 대조할 수 있는 형태였다.

첫 번째 사례는 어원이다. 헤르만 궁켈이 1895년에 창세기 1장 2절의 תְּהוֹם(테홈)이 바빌로니아 여신 티아마트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한 뒤 이 견해는 100년 가까이 인용되었다. 츠무라 다비드 도시오가 1989년과 2005년의 저작에서 이 주장을 검토한 방식은 단순하다. 우가리트어와 아카드어와 에블라어에 남아 있는 같은 계열 낱말들을 모아 문맥과 형태를 대조했다. 그 결과 두 낱말이 셈어 어근에서 각각 나온 동계어이며 차용 관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고, 이 결론은 신학적 입장이 다른 연구자들에게도 받아들여졌다.

두 번째 사례는 인용 빈도다. 마틴 셀먼이 1974년 강연에서 한 작업은 누지에서 출간된 쐐기문자 토판이 약 4000점이고 그중 족장 이야기와 관련 있다며 규칙적으로 인용되는 것이 열두 점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셈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세 번째 사례는 연대 측정이다. 에레즈 벤요세프와 리다르 사피르헨이 2013년에 아라바 계곡 구리 생산 유적의 낙타 뼈를 방사성탄소로 측정해 기원전 10세기 후반이라는 값을 얻은 것도 같은 종류다.

세 사례의 공통점은 이렇다. 주장이 특정한 관찰 결과와 연결되어 있었고, 그 관찰을 다른 연구자가 반복할 수 있었으며, 결과가 나오면 주장의 운명이 정해졌다. 어원은 대조하면 되고, 인용 빈도는 세면 되고, 연대는 측정하면 된다.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살아 있는 생물체는 대기 중의 탄소14를 일정 비율로 몸에 지닌다. 죽으면 새로 들어오지 않고 남은 탄소14가 정해진 속도로 줄어든다. 남은 양을 재면 죽은 시점으로부터 얼마가 지났는지 계산할 수 있다. 뼈나 목재처럼 생물 기원의 시료에 쓰며, 점토판이나 돌에는 쓸 수 없다. 그래서 고대 근동 연구에서 이 방법이 적용되는 대상은 제한적이다.

결판이 나지 않는 주장들도 형태가 같다

반대쪽 사례를 모아도 공통점이 나온다. 모두 의도나 내부 구조에 관한 것이며, 남아 있는 자료가 그것을 기록하지 않는다.

창세기 1장이 해와 달의 이름을 피한 것이 주변 신격을 겨냥한 것인가라는 물음이 대표적이다. 본문에는 겨냥 대상을 지목하는 문장이 없다. 저자가 그 신들을 알고 일부러 피했을 수도 있고, 애초에 그것들을 신으로 여기지 않는 전제에서 서술한 결과일 수도 있다. 두 경우가 남기는 흔적이 같기 때문에 본문으로는 갈라낼 수 없다.

자료의 개수도 마찬가지다. 창세기 뒤에 문서가 넷이었는지, 짧은 단위 여럿이었는지, 핵심에 층이 덧붙은 것인지를 판정하려면 그 자료들의 실물이 필요한데 남아 있는 것은 최종 본문뿐이다. 어느 모형이든 지금 본문을 설명할 수 있게 만들어졌으므로, 본문을 설명한다는 사실 자체는 어느 모형도 지지하지 않는다.

홍수 기사의 교차 구조도 같은 자리에 있다. 대칭이 있다는 것은 관찰이다. 그 대칭이 한 저자의 설계인지, 두 자료가 각각 대칭이었고 편집자가 끼워 넣은 결과인지는 관찰이 아니다. 스티븐 스콧이 2020년에 후자를 논증한 것은 전자를 논증한 고든 웬함의 1978년 논문과 같은 자료를 놓고 반대 방향으로 간 것이다.

이 구별에는 실질적 이득이 따른다. 어떤 주장을 만났을 때, 그 주장이 틀렸다면 무엇이 관찰될 것인가를 물으면 등급이 드러난다. 답이 나오면 판정 가능한 주장이고, 답이 나오지 않으면 판정 불가능한 주장이다.

선택 편향이 이 분야의 고질이다

판정 가능한 주장에서도 결과가 늦게 나온 이유가 있다. 자료를 고르는 절차가 검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지 사례의 숫자를 다시 보자. 4000점 가운데 열두 점이 인용되었다. 나머지 3988점이 족장 이야기와 어떤 관계인지는 보고된 적이 없다. 대규모 문서군에서 다른 문서군과 비슷해 보이는 항목 열 개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 열 개가 의미를 가지려면 우연히 기대되는 수준보다 많아야 하는데, 그 비교 기준선을 계산한 연구가 없었다.

표본 크기가 더 작은 사례도 있다. 후르리의 자매 아내 혼인 관습이 창세기의 아내와 누이 이야기를 설명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토판 한 장이었다. 하버드 셈어 총서 5권의 67번 문서이며, 누지에서 그런 관행을 보여 주는 유일한 사례이자 누지 문서 안에서도 전형적이지 않은 문서다.

반대 진영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토머스 톰슨은 1974년 저작에서 앞선 비교 연구들의 표본 부족을 지적했는데, 엘리에셀의 입양 문제를 다루면서 그 자신은 누지의 실자 입양 계약 50건 가까이 가운데 열한 건만 검토했다. 앞선 연구들의 최대치보다 나아졌지만 전수 조사는 아니었다.

1895년의 어원 주장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존 월턴이 2008년 논문에서 지적한 대로, 궁켈이 혼돈과의 싸움을 고대 근동 창조 기사의 주요 모티프라고 주장하기는 쉬웠다. 그 시점에 고려할 수 있는 창조 기사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표본이 하나면 그 하나가 곧 전체의 특징이 된다.

세 사례에서 반복되는 구조가 있다. 결론을 지탱한 것은 표본의 크기였고, 표본이 커지자 결론이 바뀌었다. 이 분야에서 어떤 주장을 평가할 때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그 주장이 몇 개의 자료 위에 서 있는가다.

침묵 논증은 양쪽에서 비대칭으로 쓰인다

자료가 없을 때 그 없음을 근거로 삼는 논증을 침묵 논증이라 부른다. 이 분야에서는 양쪽이 모두 쓰지만 쓰는 방식이 다르다.

역사성을 부정하는 쪽은 대응 유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근거로 쓴다. 족장들의 이름이 새겨진 유물이 없고, 유목 집단은 고고학적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여기 걸린다. 그런데 흔적을 남기지 않는 집단이라면 흔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 집단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역사성을 옹호하는 쪽은 반박이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쓴다. 고고학이 족장 이야기를 반증하지 못했다는 진술이다. 그런데 반증되지 않았다는 것과 확증되었다는 것은 다르다. 토머스 톰슨이 내린 판정은 정확히 이 지점에 있다. 고고학은 족장 전승의 어떤 사건도 역사적임을 증명하지 못했고, 어떤 전승도 개연적임을 보여 주지 못했다. 두 문장 모두 부정형이며, 여기서 이야기가 허구라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침묵 논증이 성립하려면 조건이 있다. 자료가 있었어야 마땅한 자리에서 비어 있어야 한다. 왕궁 문서고에서 왕의 이름이 빠져 있으면 의미가 있고, 사막의 야영지에서 개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 조건을 따지지 않은 채 침묵을 근거로 삼는 문장이 양쪽에 흔하다.

125년 전과 같은 답이 다시 나오고 있다

학설의 현재 상태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도 이 구별과 얽혀 있다.

토마스 뢰머는 2013년 『구약학회지』 125권 1호 2쪽부터 24쪽까지 실은 「문서와 단편과 보충 사이에서: 오경 연구의 현황」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그는 1881년 이 학회지가 창간될 때 최신 문서가설이 승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연구사를 훑어보면 문서가설과 단편가설과 보충가설이 대체로 함께 결합되어 쓰였으며, 오늘날 논의되는 대부분의 새로운 출발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한다.

이 관점에서 그는 벤저민 슈워츠와 조엘 베이든 등이 제시한 문서가설의 판본이 오히려 낡아 보인다고 평가한다. 논문의 뒷부분은 창세기 15장, 출애굽기 3장과 6장, 신명기 34장, 여호수아 24장 같은 본문을 근거로 세 가지 쟁점을 검토한다. 족장 전승과 출애굽 전승이 원래 독립적이었는가, 이른바 제사장 문서의 성격은 무엇인가, 오경인가 육경인가라는 물음이다.

그는 오경의 성립을 설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이 125년 전과 마찬가지로 세 유형의 가설을 결합하는 데 있다고 결론짓는다.

독일어권 연구에서는 현재 상태를 더 강한 표현으로 부르기도 한다. 야웨 문서의 연대가 급격히 내려가고, 엘로힘 문서의 존재가 부정되고, 문서가설 전체가 기각된 뒤에 오경 연구에 무정부 상태가 생겼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서술이다.

이 서술들이 알려 주는 것은 한 가지다. 어느 시점의 결론을 학계의 정설로 인용하는 서술은 그 시점을 벗어나면 부정확해진다. 문서가설을 정설로 소개하면 1977년 이후 유럽 학계를 반영하지 않고, 폐기되었다고 소개하면 2012년 이후 북미 학계를 반영하지 않으며, 둘 중 하나를 고르면 2013년 이후 다시 결합으로 수렴하는 흐름을 반영하지 않는다.

출처의 문제와 권위의 문제는 논리적으로 분리된다

마지막으로 정리해야 할 것은 이 논쟁이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결정하지 않는가다.

창세기의 자료가 어디서 왔는가는 역사적 물음이다. 창세기가 어떤 권위를 갖는가는 신학적 물음이다. 두 물음은 자주 한 덩어리로 다루어지지만 논리적으로 분리된다.

분리를 보여 주는 사례가 학설사 안에 있다. 자료비평을 시작한 장 아스트뤼크는 1753년 책에서 성경의 권위를 방어하려 했다. 스피노자가 창세기의 모순을 들어 모세 저작을 부정하자, 그 모순이 모세가 쓴 원자료에서 왔다고 설명해 모세 저작을 지키려 했다. 같은 도구가 한 세기 뒤에는 반대 방향으로 쓰였다. 도구가 결론을 내장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반대 방향의 분리도 성립한다. 어떤 서술이 옛 전승에서 왔다는 사실은 그 서술이 참인지 거짓인지 결정하지 않는다. 전승으로 전해진 참인 사실도 있고 문서로 기록된 거짓도 있다. 자료의 경로와 진술의 진위는 독립된 문제다.

그래서 이 논쟁의 결과가 신앙의 내용을 결정한다고 전제하면, 자료를 보는 눈이 결론에 묶인다. 자료가 어느 쪽으로 나오든 곤란해지므로 자료를 고르게 되고, 앞에서 본 선택 편향이 바로 그렇게 생긴다. 1930년대의 누지 비교도, 1895년의 어원 주장도, 그 반대편의 낙타 보도도 같은 경로를 지났다.

결론 — 확정되는 것은 셀 수 있는 주장뿐이고, 나머지는 전제가 결정한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한 문장으로 모인다. 창세기 논쟁에서 결판이 난 주장은 셀 수 있거나 대조할 수 있는 형태였고, 결판이 나지 않은 주장은 저자의 의도나 사라진 자료의 구조에 관한 것이었다.

결판이 난 쪽을 다시 모으면 이렇다. 히브리어 테홈은 바빌로니아 여신 티아마트에서 파생되지 않았다. 누지 문서 4000점 가운데 족장 이야기와 관련해 인용되는 것은 열두 점을 넘지 않는다. 남부 레반트에서 사육 낙타가 확인되는 가장 이른 연대는 기원전 10세기 후반이다. 세 진술 모두 다른 연구자가 같은 절차로 확인할 수 있고, 그래서 진영과 무관하게 받아들여졌다.

결판이 나지 않은 쪽도 모을 수 있다. 창세기 1장이 주변 신격을 겨냥했는지, 창세기 뒤에 몇 개의 자료가 있었는지, 홍수 기사의 대칭이 한 저자의 설계인지. 이 물음들에는 틀렸다면 무엇이 관찰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

판단이 나뉘는 자리를 확정하면 이렇다. 두 등급을 섞어 인용하면 어느 진영이든 자기 결론을 정설로 제시할 수 있다. 문서가설을 학계의 합의로 소개하는 문장과 문서가설이 폐기되었다고 소개하는 문장은 둘 다 특정 시점과 지역의 상태를 전체로 옮긴 것이며, 둘 다 인용된 연구를 직접 읽지 않고도 쓸 수 있다. 구별을 세우는 비용은 개별 문헌을 확인하는 수고이고, 구별을 세우지 않는 비용은 논쟁이 진영 확인 절차로 바뀌는 것이다.

이 분야의 조건은 당분간 달라지지 않는다. 새 점토판이 계속 나오지만 그것이 답하는 것은 낱말과 연대와 관행이지 저자의 의도가 아니다. 판정 불가능한 물음에서는 자료가 아니라 전제가 결론을 정하며, 그 전제는 대개 본문 바깥에서 온다. 전제를 드러내 놓고 따지는 작업과 결론만 골라 자기 입장의 권위로 삼는 작업이 갈라지는 지점이 거기다. 앞의 작업은 상대의 전제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들고, 뒤의 작업은 200년 된 논쟁을 한 번 더 반복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