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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베클리 테페의 천문 해석 — 기둥을 별자리와 달력으로 읽는 주장에는 기각 조건이 없다

2017년과 2024년에 나온 두 편의 논문은 괴베클리 테페 43번 기둥의 조각을 별자리 지도와 태음태양력으로 읽었다. 언론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달력이라는 제목으로 전했다. 발굴단은 같은 학술지에 반론을 실었고 저자는 답했다. 그 답변을 읽으면 이 논쟁의 성격이 드러난다. 문제는 결론이 옳은지 그른지가 아니라, 어떤 관측이 나와도 이 해석이 기각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26년 9월 12일

2024년 여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달력이라는 문장이 퍼졌다

2024년 7월 24일,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공학부 재료·공정연구소의 마틴 스웻먼이 학술지 Time and Mind 17권 3·4호에 57쪽 분량의 논문을 실었다. 제목은 「괴베클리 테페와 카라한테페의 달력과 시간 표상은 그 상징에 대한 천문학적 해석을 지지한다」이고, 2022년 2월 14일에 투고되어 2024년 6월 18일에 게재가 확정되었다. 투고에서 게재까지 2년 4개월이 걸린 논문이다.

논문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괴베클리 테페 D 구조물의 43번 기둥에 새겨진 V자 모양 기호들을 날짜의 표시로 읽으면, 12개의 태음월에 11일을 더한 태음태양력 체계가 나온다. 이 해석이 옳다면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음태양력이 된다. 나아가 괴베클리 테페의 기둥 11개짜리 구조물들과 인근 카라한테페의 기둥 11개짜리 못 모양 구조물도 같은 역법 체계로 읽을 수 있다. 우르파 맨 석상과 사이부르츠 벽면 부조와 카라한테페의 석상이 목에 두른 V자 목걸이는 시간을 주관하는 신 또는 창조신의 표지로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이 영거드라이아스 충돌 사건과 연결되며, 그 연결이 신석기 전환의 기원에 관한 자크 카우뱅의 이론에 해답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표 직후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한국어 기사와 영어 기사의 제목이 같았다. 1만 2000년 전의 달력이 발견되었다는 문장이다.

태음태양력과 에파고메나이 달의 차고 기움을 한 달의 기준으로 삼는 달력을 태음력이라고 한다. 달의 삭망 주기는 약 29.5일이므로 열두 달은 354일쯤 된다. 그런데 계절은 태양의 운행에 따라 약 365.25일마다 되풀이된다. 태음력만 쓰면 해마다 11일씩 계절과 어긋난다. 그래서 몇 해에 한 번 윤달을 넣거나, 열두 달 끝에 여분의 날을 붙여 맞춘다. 이렇게 달과 해를 함께 맞춘 달력이 태음태양력이다. 열두 달 뒤에 붙이는 여분의 날을 그리스어에서 온 말로 에파고메나이(epagomenai), 곧 '덧붙은 날들'이라고 부른다. 고대 이집트력의 5일이 널리 알려진 사례다. 354일에 11일을 더하면 365일이 되므로, 스웻먼이 말하는 11일은 이 자리를 가리킨다.

이 주장의 출발점은 2017년의 별자리 대응표다

2024년 논문은 스스로 밝히듯 앞선 해석을 확장한 것이다. 그 앞선 해석은 스웻먼이 디미트리오스 치크리치스와 함께 2017년 Mediterranean Archaeology and Archaeometry 17권 1호 233~250쪽에 실은 논문이다. 제목은 「고고천문학으로 괴베클리 테페 해독하기: 여우는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다.

두 저자의 논증은 두 단계로 되어 있다. 먼저 기둥에 새겨진 동물 조각을 현대 서양 별자리와 짝지었다. 짝짓기에 쓴 도구는 천문 소프트웨어 스텔라리움 0.15의 서양 별자리 자료였다. 다음으로 그 짝짓기를 근거로, 43번 기둥이 특정 시점의 하늘을 기록한 날짜 도장이며 그 시점이 기원전 1만 950년 전후 250년이라고 계산했다. 이 시점은 영거드라이아스 한랭기의 시작과 겹친다. 따라서 43번 기둥은 혜성 충돌 사건을 기념한 기록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두 사람이 2017년에 제시한 대응은 아래와 같다. 이 표는 뒤에 나온 모든 주장이 딛고 선 토대다.

43번·2번 기둥의 조각대응시킨 별자리
전갈전갈자리
몸을 굽힌 새물고기자리
오리 또는 거위천칭자리
개 또는 늑대이리자리
독수리 또는 대머리수리궁수자리
물고기를 문 채 굽은 새뱀주인자리
기어 내려오는 개구리처녀자리
돌진하는 아이벡스 또는 웅크린 쥐쌍둥이자리
들소염소자리
여우물병자리 북부

대응의 근거로 제시된 것은 형태의 유사성과 배치의 유사성이며, 그 위에 통계적 추정이 얹힌다. 이만큼의 짝이 우연히 맞을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계산이다. 두 저자는 2017년의 답변 글에서 이 점을 강조하면서, 입자물리학이라면 이 정도 신뢰수준으로 새 입자의 발견을 선언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결론을 반박하려면 이 통계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못 박았다.

세차운동과 날짜 도장 지구의 자전축은 팽이가 기울어 도는 것처럼 약 2만 6000년을 주기로 천천히 원을 그린다. 이것을 세차운동이라고 한다. 그 결과 같은 계절의 같은 시각에 보이는 별자리가 수천 년 단위로 조금씩 바뀐다. 예를 들어 춘분날 해가 어느 별자리 앞에 있는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이 성질을 뒤집어 쓰면, 어떤 기록이 특정 별자리 배치를 가리킬 때 그 배치가 성립하는 연대를 역산할 수 있다. 스웻먼과 치크리치스가 43번 기둥에서 기원전 1만 950년을 끌어낸 원리가 이것이다. 다만 역산이 성립하려면 그 기록이 실제로 별자리를 그린 것이어야 하고, 그 별자리의 모양이 지금 우리가 쓰는 것과 같아야 한다. 두 전제가 모두 성립해야 연대가 나온다.

발굴단은 같은 학술지에 다섯 갈래로 반박했다

2017년 6월, 괴베클리 테페를 발굴하던 독일고고학연구소 연구진이 같은 학술지 17권 2호 57~63쪽에 반론을 실었다. 제목은 「대머리수리 이상의 것: 스웻먼과 치크리치스에 대한 응답」이고, 옌스 노트로프를 제1저자로 올리버 디트리히, 라우라 디트리히, 세실리 렐레크 트베트마르켄, 모리츠 킨첼, 요나스 슐린트바인, 데브림 쇤메즈, 리 클레어가 함께 이름을 올렸다. 학술지 편집진이 원 논문과 같은 지면에 실어 주기로 합의해 성사된 반론이다. 저자들은 서두에서 자신들이 천문학 계산의 타당성은 판단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고고학 쪽 논점만 다루겠다고 범위를 한정했다.

반박은 다섯 갈래였다.

첫째는 건물의 상태다. 이 유적의 원형 구조물은 어느 하나도 완전히 발굴되지 않았다. 기둥 상당수가 원래 자리에 서 있지 않으며, 건축 고고학 연구는 기둥이 뽑혀 다른 자리에 재사용된 사례를 여럿 확인했다. 지금 보이는 모습은 여러 차례의 건축과 재건축이 쌓인 결과다. 여기에 더해 이 구조물들에 지붕이 있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지붕이 있었다면 하늘 관측 시설이라는 기능 자체에 제약이 생긴다. 43번 기둥 넓은 면에 새겨진 아치 모양을 스웻먼과 치크리치스는 '손가방'이라고 불렀는데, 반론 저자들은 이것이 내쌓기 지붕을 덮은 건물 자체의 그림일 수 있다고 보았다.

둘째는 연대다. 스웻먼과 치크리치스가 43번 기둥에 붙인 기원전 1만 950년은 D 구조물에서 얻은 가장 오래된 방사성탄소 연대보다 700년에서 1000년 이르다. 그 연대는 벽체 회반죽에 섞인 유기물에서 나온 값이다. 기둥이 뒤에 재사용된 사례가 있다 해도, 확인되지 않은 고대의 우주 사건에 관한 지식이 그만큼 오래 전승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이 유적에서 나온 가장 이른 방사성탄소 연대는 영거드라이아스의 시작이 아니라 그 끝과 겹친다.

셋째는 별자리의 안정성이다. 서아시아 상부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신석기 수렵민이 고대 이집트와 아라비아와 그리스의 학자들이 기술한 것과 똑같은 별자리를 알아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 머릿속에 있는 별자리는 그 학자들에게서 온 것이다.

넷째는 표본 선택이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거석 T자형 기둥은 그 시점에 이미 60개를 넘었고, 그 가운데 다수가 비슷한 동물 부조와 추상 기호를 지니고 있으며 H 구조물의 56번 기둥처럼 43번 기둥만큼 복잡한 것도 있다. 게다가 도상 체계는 기둥 말고도 석제 용기와 화살대 곧은대와 소형 판석에 있으며, 이 유적 말고도 같은 시기 인근 유적들에 있다. 그중 몇 개를 골라 해석한 결과를 두고 이 유적 상징의 상당 부분을 다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섯째는 도상의 맥락이다. 이 유적의 동물 그림은 무작위가 아니라 건물마다 다른 종이 두드러지는 패턴을 보인다. A 구조물은 뱀, B 구조물은 여우, C 구조물은 멧돼지, D 구조물은 새다. 반론 저자들은 이 차이를 공동체 소속의 표시로 읽으면서, 각 구조물이 서로 다른 사회 집단의 필요에 대응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런 맥락을 떼어 놓고 기둥 하나를 골라 멀리 나가는 해석을 붙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구체적인 예로 43번 기둥 하단의 머리 없는 인물을 들었다. 스웻먼과 치크리치스는 이것을 죽음과 재앙과 절멸의 상징으로 읽었는데, 그 인물에게는 뚜렷하게 강조된 남근이 함께 새겨져 있다. 생명 없음을 뜻한다는 해석과 어긋나는 요소를 말없이 빼놓았다는 것이다. 또 43번 기둥에는 좁은 양 측면에도 부조가 있는데 그 연구는 이를 다루지 않았다.

반론의 서두에는 논점과 별개인 대목이 하나 더 있다. 이런 종류의 관찰은 유사고고학 쪽에서 오랜 계보를 가지며, 그 사실만으로 주장이 실격되지는 않지만, 고대 외계인 계열 저술이 참고문헌에 들어온 반면 20년치 학술 문헌은 대부분 빠졌다는 점은 놀랍다는 서술이다.

답변이 논쟁의 성격을 드러냈다

스웻먼과 치크리치스는 같은 호 63쪽에 답변을 실었다. 반박 다섯 항목에 하나씩 대응하는 형식이다. 이 답변이 이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다. 결론의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이 해석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를 저자 스스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붕 항목에 대한 답은 이렇다. 현장 발굴자의 판단을 존중하며 지붕이 있었다면 관측 기능에 제약이 생긴다는 데 동의한다. 다만 건물이 한 번에 지어지지 않았고 기둥이 옮겨진 정황이 있으므로, 거친 돌벽을 쌓기 전에 기둥이 홀로 서 있던 단계가 앞섰을 수 있다. 많은 기둥의 조각이 그 벽에 가려져 있는데, 그만한 노력을 들여 새긴 그림을 곧바로 벽 속에 감추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지붕이 있었든 없었든 자신들의 해석에 쓰인 통계에는 거의 영향이 없으며, 영향을 받는 것은 이 유적의 특정 시기 용도에 대한 해석뿐이라는 것이다.

연대 항목에 대한 답은 이렇다. 간격이 있다는 것은 원 논문에도 적혀 있다. 이를 지나치다고 하는 것은 의견일 뿐 근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43번 기둥 자체의 제작 시점은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일부 기둥, 특히 43번 기둥은 거친 돌벽이 더해지기 훨씬 전에 만들어졌을 수 있다. 게다가 영거드라이아스 사건이 당대 사람들에게 미쳤을 충격을 생각하면 수천 년 뒤까지 기억되는 것이 놀랍지 않다. 오늘날에도 그런 장기 기억의 사례는 많다. 여러 주요 종교가 그렇다.

별자리 안정성 항목에 대한 답도 같은 형식이다. 몇천 년은 괜찮고 그보다 8000년이나 9000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안 되는 이유가 제시되지 않았으므로 이 역시 의견일 뿐이다. 별자리의 정의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표류하리라는 데는 동의하며, 자신들의 통계는 실제로 그런 표류가 일어났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는 새로운 역사 연구의 길을 여는 흥미로운 결과다.

표본 선택 항목에 대한 답에서 논증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난다. 두 저자는 해독에 필요한 기둥을 고른 것이라고 답한 뒤, 발굴단이 지목한 56번 기둥을 즉석에서 다루는 대신 33번 기둥을 먼저 해석해 보인다. 33번 기둥의 한 면에는 여우의 배에서 뱀들이 뻗어 나오고 다른 면에는 몸을 굽힌 새의 배에서 뱀들이 뻗어 나오며, 뱀 머리들이 모두 좁은 안쪽 면으로 모인다. 두 저자는 이 장면이 통상적인 동물 행동으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자신들의 천문 해석으로는 분명해진다고 적는다. 북쪽 황소자리 유성군을 그린 것이며, 한쪽 면에서는 유성(뱀)이 물병자리(여우)에서, 다른 쪽 면에서는 물고기자리(새)에서 뻗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56번 기둥에 대해서는, 뱀과 키 큰 새가 있으므로 다시 황소자리 유성군을 가리킬 것이라고 적는다.

이 대목에서 확인되는 것은 해석의 유연성이다. 뱀은 유성이고, 여우와 멧돼지와 새는 황소자리 유성군의 북류와 남류다. 그렇다면 발굴단이 제시한 건물별 동물 편중, 곧 A 구조물의 뱀과 B 구조물의 여우와 C 구조물의 멧돼지와 D 구조물의 새도 그대로 흡수된다. 실제로 두 저자는 다섯째 항목에 대한 답에서 정확히 그렇게 답했다. 건물마다 다른 동물이 두드러지는 현상은 자신들의 해석과 모순되지 않으며, 서로 다른 유성군이나 같은 유성군의 다른 시기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덧붙였다. 자신들의 해석이 통계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그와 어긋나는 어떤 해석도 틀렸을 것이라는 문장이다.

여기가 이 논쟁이 멈추는 자리다. 새 기둥이 나오면 그 기둥도 유성군으로 읽힌다. 건물마다 동물이 다르면 그것도 유성군의 변이로 읽힌다. 지붕이 있었다는 증거가 나와도 통계에는 영향이 없다고 답한다. 연대가 1000년 어긋나도 구전으로 메운다. 별자리가 다를 수 있다는 지적은 별자리가 표류했다는 발견으로 전환된다. 어떤 관측이 나오면 이 해석을 버려야 하는지, 그 조건이 제시되지 않는다.

같은 방법으로 다른 하늘이 나온다

같은 호에 세 번째 글이 함께 실렸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덜루스 캠퍼스 지구환경과학과의 폴 벌리가 쓴 「스웻먼과 치크리치스 논문에 대한 비판적 평가」다. 이 글이 흥미로운 이유는 저자가 천문 해석 자체를 반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43번 기둥이 천문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전제를 공유하면서, 대응을 다르게 맞춘다.

벌리의 수정은 이렇다. 스웻먼과 치크리치스가 천칭자리로 읽은 큰 거위 또는 오리는 실제 하늘에서 위치가 맞지 않는다. 굽은 새를 뱀주인자리로 읽으면 천칭자리는 뱀 오른쪽에 있어야 하는데 기둥에서는 아래에 있다. 벌리는 이 새의 머리와 목을 제단자리로 읽고, 눈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단자리 알파별로 본다. 개 또는 늑대를 이리자리로 읽은 것도 방향이 어긋난다. 이리자리는 전갈자리의 서쪽 아래에 있는데 기둥에서는 전갈 왼쪽에 있다. 벌리는 이를 망원경자리와 제단자리 세타별로 본다. 전갈 왼쪽 위의 또 다른 굽은 뱀은 남쪽왕관자리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웅크린 새는 전갈자리의 안타레스와 웨이로 읽는다. 그리고 태양을 나타낸다는 원반은 황도와 은하면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인다고 본다.

벌리의 결론은 자신의 대응이 조각과 실제 별 배치를 더 정확하게 맞춘다는 것이고, 그 위에서 스웻먼과 치크리치스가 배치한 별자리들의 위치와 방향이 실제 하늘의 공간 배열과 잘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 대응이 가리키는 시대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미정이라고 적는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방법의 성질이다. 같은 기둥, 같은 조각, 같은 종류의 천문 소프트웨어를 써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별자리 지도가 나왔다. 두 사람 모두 자기 대응이 더 정확하다고 판단하지만, 어느 쪽이 옳은지를 가릴 독립된 기준은 제시되지 않는다. 벌리 자신이 마지막 문단에서 이 문제를 인정한다. 조각과 별 배치의 대응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조각의 어떤 특징을 점으로 삼을지 먼저 정하고 그 점 패턴을 별의 점 패턴과 통계적으로 비교해야 하는데, 그 작업은 그림을 눈으로 보는 수준을 넘어서는 일이며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벌리의 글에는 논쟁의 계보를 보여주는 대목도 있다. 그가 자기 대응의 근거로 드는 것은 2013년에 자신이 쓴 글인데, 그 글이 실린 곳은 학술지가 아니라 그레이엄 핸콕의 개인 웹사이트다. 그리고 핸콕이 2015년에 낸 단행본 『신들의 마술사』가 그 글의 내용을 다루면서 43번 기둥의 날짜 도장을 추론했다. 학술지 지면에서 진행되는 논쟁과 대중 유사고고학 사이에 통로가 나 있다는 뜻이다. 발굴단이 반론 서두에서 짚은 것도 이 통로였다.

지붕이 있었다는 증거는 그 뒤로 늘었다

지붕 문제는 2017년에는 가능성 수준의 논점이었다. 그 뒤 7년 동안 증거가 늘었다.

리 클레어가 2024년 Documenta Praehistorica 51권 6~43쪽에 실은 논문은 2023년 D 구조물 발굴에서 확인한 것들을 열거한다. 건축 구조에 남은 손상, 잔해 속의 공기주머니, 무너진 지붕에서 나온 목재 들보의 음형, 그리고 잔해 기질 안에 보존된 지붕 미장 구역이다. 목재 들보의 음형이란 나무가 썩어 사라진 뒤 그 자리에 남은 빈 공간을 말한다. 주변 퇴적물이 굳으면서 형태를 유지했기 때문에 들보의 굵기와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지붕 미장은 지붕 표면을 발랐던 진흙층이다.

같은 논문은 이 증거들을 다른 논의에도 연결한다. 특수건물의 내부가 대낮에도 인공 조명에 의존하는 어두운 공간이었다면, 그 안에서 벌어진 일은 자연 동굴 환경에서 벌어지는 일과 비교할 만해진다는 것이다. 클레어는 이를 구술 서사가 연행되는 무대라는 해석과 묶는다. 이 해석의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지붕의 존재를 전제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7년 사이의 변화를 보여준다.

지붕 논거는 에드워드 배닝이 2011년 Current Anthropology 52권 5호에서 이미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그가 든 근거 가운데 하나는 잘 보존된 진흙 미장이었다. 건물이 오랫동안 하늘에 열린 채로 있었다면 비에 씻겨 나갔으리라는 지적이다. 또 하나는 중앙 기둥의 불안정성이었다. 발굴된 중앙 기둥들은 들보와 케이블로 받쳐야 서 있으므로 원래는 지붕 구조에 기대어 지탱되었으리라는 추론이다.

관측 시설이라는 전제가 무너진다고 해서 천문 해석 전체가 자동으로 기각되지는 않는다. 조각이 하늘에 관한 지식을 담았을 가능성과 건물이 관측소였을 가능성은 별개 주장이기 때문이다. 다만 스웻먼과 치크리치스의 2017년 논문은 '우주 관측소'라는 표현을 썼고, 발굴단의 반론도 그 표현을 인용해 다루었다. 답변에서 통계에는 영향이 없다고 물러선 것은 논지의 범위가 그만큼 줄었다는 뜻이다.

밑에 깔린 가설도 확정되지 않았다

이 해석 전체는 영거드라이아스 충돌 가설 위에 서 있다. 43번 기둥이 기념한다는 사건이 그것이고, 2024년 논문이 카우뱅의 이론에 해답을 준다고 말할 때의 고리도 그것이다.

영거드라이아스와 충돌 가설 영거드라이아스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가던 약 1만 2900년 전부터 1만 1600년 전까지 약 1300년 동안 북반구가 다시 추워진 기간이다. 원인으로는 북미 로랜타이드 빙상에서 녹은 물이 한꺼번에 흘러들어 북대서양의 열염순환을 교란했다는 설명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와 별개로 2007년에 로버트 파이어스톤을 제1저자로 하는 연구진이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에 다른 설명을 냈다. 약 1만 2900년 전 지구가 외계 천체와 충돌했고 그 충격이 대형 포유류 절멸과 한랭화를 불렀다는 주장이다. 근거로 제시된 것은 특정 지층에서 검출되는 나노다이아몬드, 탄소 구체, 자성 입자, 백금 이상치 같은 미세 물질이다. 이것이 영거드라이아스 충돌 가설이다.

이 가설의 현재 상태는 미확정이 아니라 격렬한 논쟁 중이다. 2023년 밴스 홀리데이를 제1저자로 하는 연구진이 Earth-Science Reviews에 「영거드라이아스 충돌 가설의 포괄적 논박」을 실었다. 분량이 약 9만 6000단어에 이르는 글이다. 요지는 이렇다. 이 가설은 궤도역학과 충돌물리학과 지질학과 지구화학과 고식물학과 고기후학과 인류학을 아우르는 일관된 시나리오로 수렴한 적이 없다. 공간과 시간에 따라 다르게 진행된 복잡한 과정들을 한 시점의 우주 사건 하나로 설명하려 한다. 영거드라이아스의 시작에 해당하는 연대를 가진 충돌구는 확인된 바 없다. 제시된 물리적 증거는 모두 나노에서 마이크로 단위의 미세 물질이며, 이들은 지구 내부의 과정으로도 생길 수 있다.

이에 대해 2024년 스웻먼과 제임스 파월과 앨런 웨스트가 같은 학술지에 반박을 실었다. 요지는 이 가설이 수십 개 학술지의 수많은 논문으로 뒷받침되고 다섯 대륙 50곳이 넘는 경계층 유적에서 증거가 반복 확인되었으므로, 이를 논박하려면 결정적인 반증과 대안 과정이 필요한데 홀리데이 측은 둘 다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홀리데이 측은 같은 해에 재반박을 실었다. 그 글은 상대의 방어가 동료심사와 입증과 반복검증과 반증에 관한 통상적이지 않은 정의에 기대고 있다고 적었다. 2026년에도 에든버러대학교 쪽에서 홀리데이 측의 서술이 원 연구를 잘못 옮겼다는 논평이 나왔다.

이 상태에서 43번 기둥의 해석이 하는 일을 보면 논증의 구조가 드러난다. 스웻먼과 치크리치스는 2017년 논문에서 괴베클리 테페를 이 논쟁의 결정적 증거로 제시했다. 반대 방향으로, 2024년 논문은 충돌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는 전제 위에서 V자 기호의 해석을 전개한다. 한쪽에서 다른 쪽을 근거로 쓰고, 다른 쪽에서 한쪽을 근거로 쓴다. 두 주장 모두 독립된 확정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서로를 지탱한다.

발화 위치도 이 구조의 일부다. 스웻먼은 에든버러대학교 공학부 재료·공정연구소 소속이고, 그의 주요 연구 분야는 고고학이 아니다. 이 사실이 주장을 실격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충돌 가설 논쟁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홀리데이 측 논박에 대한 반박의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고, 2019년에 『선사 해독』이라는 단행본으로 이 주제를 다루었다. 괴베클리 테페 해석이 충돌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로 제시될 때, 그 증거를 제시하는 쪽과 그 가설을 옹호하는 쪽이 같다.

2020년 이후의 편년 재구성이 연대 논점을 바꿨다

2017년 반론에서 지적된 700년에서 1000년의 간격은 그 뒤 다른 성격의 문제가 되었다.

모리츠 킨첼과 리 클레어가 2020년 『Monumentalising Life in the Neolithic』에 실은 글은 이 유적의 편년을 다시 짰다. 종전에는 원형 특수건물이 층 III(PPNA), 사각형 건물이 층 II(초기 PPNB)로 위아래에 놓였다. 새 편년에 따르면 특수건물은 오래 쓰인 다단계 구조물이고, 그 후기 단계는 비탈의 사각형 주거와 같은 시기다. 3단계나 4단계 대신 최소 8단계가 제시되었다. 클레어가 2024년 논문에 실은 D 구조물 도면에서 특수건물 A, B, C, D는 시간이 지나면서 크기가 줄어드는 다단계 구조물로 표시된다.

이 재구성은 두 방향으로 작용한다. 한편으로 스웻먼과 치크리치스가 답변에서 제시한 가능성, 곧 기둥이 거친 돌벽보다 먼저 세워졌을 수 있다는 추정에는 여지를 준다. 다단계 건축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연대의 근거를 더 어렵게 만든다. 기둥의 제작 시점을 가리킬 독립된 연대가 없는 상태에서, 벽의 연대가 기둥의 하한선이라는 것만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레어가 2024년에 정리한 D 구조물의 후기 단계는 기원전 9세기 천년기 후반이다. 43번 기둥 옆 벤치에 멧돼지 석상이 놓인 시점이 그 무렵으로 추정된다.

결정적 자료가 될 수 있는 것은 기둥 조각 자체를 직접 연대측정하는 방법인데, 석회암에는 적용할 유기물이 없다. 벽체 회반죽 시료가 지금 쓸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대체물이다. 클레어가 2020년에 보고했듯이, 특수건물 A, B, C, D의 벽체 진흙 모르타르에서 뽑은 유기물로 잰 연대는 충전토에서 뽑은 시료보다 훨씬 균질했고 이 건물들이 종전에 인정되던 것보다 훨씬 오래 쓰였음을 보여주었다. 일부 건물의 마지막 건축 단계는 최초 축조로부터 500년 넘게 지난 시점이었다.

V자 기호를 세는 일에는 앞선 단계가 있다

2024년 논문의 핵심 작업은 43번 기둥의 V자 기호를 세는 것이다. 이 작업이 성립하려면 세 가지가 먼저 정해져야 한다. 어떤 자국을 V자 기호로 셀 것인지, 그 기호들이 한 번에 새겨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날짜를 세는 표시인지다.

첫째 문제부터 간단하지 않다. 이 유적의 기둥 표면에는 부조와 음각과 풍화 흔적이 섞여 있다. 발굴단이 2017년 반론에서 43번 기둥의 좁은 측면에도 부조가 있다고 지적한 것은 어떤 면을 대상으로 삼느냐가 이미 선택이라는 뜻이다. 둘째 문제는 다단계 건축과 직접 연결된다. 발굴단은 기둥이 뽑혀 재사용되었고 뒤에 추가된 낙서 성격의 조각도 있다고 기록했다. 2017년에 노트로프가 작성한 건물별 도상 분포표에는 뒤에 덧붙인 낙서와 상징적으로 축약된 도상은 집계에서 뺐다는 주석이 붙어 있다. 셋째 문제는 해석 그 자체다.

세 단계 각각에 다른 선택이 가능하고, 선택이 달라지면 숫자가 달라진다. 앞서 본 벌리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도 같은 성질이다. 대응을 정하는 규칙이 명시되지 않으면, 같은 그림에서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오고 어느 쪽이 옳은지 가릴 수 없다.

수를 세는 해석에 관해서는 다른 분야의 경험이 참고가 된다. 후기 구석기 동굴 미술의 점과 선을 달의 주기와 연결하는 해석은 오래된 주제이고, 최근에도 새 제안이 나왔다. 이런 연구에서 반복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세는 대상을 정하는 기준이 사후에 정해진다는 점이다. 결과가 나온 뒤에 그 결과가 나오도록 대상을 정했다면 검증이 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피하려면 셀 대상을 먼저 규정하고, 그 규정을 다른 기둥과 다른 유적에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보여야 한다.

발굴단이 같은 상징을 다루는 방식

비교를 위해 발굴단이 이 유적의 반복 상징 하나를 어떻게 다루는지 볼 만하다.

D 구조물에는 H자 모양 기호가 여러 곳에 새겨져 있다. 여러 기둥의 부조로, 중앙에 선 두 인물형 기둥의 목걸이와 허리띠 장식에 포함된 요소로, 동쪽 벽돌 하나에, 건물 바닥을 다듬은 석회암 면에, 그리고 멧돼지 석상이 놓인 벤치에 새겨져 있다. 1997년에는 섬록암 계열 돌로 만든 길이 25.5센티미터의 홀이 나왔는데, 그 좁은 끝부분에 H자 기호가 두 개 새겨져 있다. 이런 형태의 간 돌 홀은 서아시아 여러 토기 이전 신석기 유적에서 나오며, 권력의 상징으로 해석되는 몇 안 되는 물건에 속한다.

클레어는 2024년 논문에서 이 사실들을 나열한 뒤, 이 기호가 영감을 받은 개인이나 카리스마적 지도자와 연결되는 상징일 수 있다는 해석의 가능성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그 이상 나가지 않는다. 이 기호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결론은 제시되지 않는다. 같은 논문에서 그는 D 구조물 바닥의 구덩이 시설을 다루면서, 실용적으로 보면 석회암 기반암의 자연 균열을 메운 보수 작업 같지만 남아 있는 붉은 안료와 옆에 새겨진 H자 기호를 보면 다른 기능이었을 수도 있다고 적고 판단을 유보한다.

두 방식의 차이는 결론의 대담함이 아니라 진술의 형식에 있다. 한쪽은 무엇이 확인되었고 무엇이 확인되지 않았는지를 문장 단위로 구분한다. 다른 쪽은 확률 계산을 근거로 제시한 뒤 반대 의견을 근거 없는 의견으로 분류한다.

결론 — 기각 조건이 없는 주장은 심사를 통과해도 검증된 것이 아니다

이 논쟁에서 확인된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43번 기둥에 복잡한 조각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V자 모양 기호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 기호들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합의는 없다. 이 상태에서 두 편의 논문이 별자리 대응표와 날짜 계산을 제시했고, 발굴단은 다섯 갈래로 반박했으며, 저자들은 다섯 항목 모두에 답했다. 답변의 공통된 형태는 반대 근거를 흡수하거나 통계에 영향이 없다고 처리하는 것이었다. 같은 방법을 쓴 제3자는 다른 대응표를 내놓았고, 어느 쪽이 옳은지 가릴 기준은 제시되지 않았다. 해석이 딛고 선 충돌 가설은 2023년의 대규모 논박과 2024년의 반박과 재반박을 거쳐 2026년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관측소 전제를 흔드는 지붕 증거는 2023년 발굴에서 늘어났다.

그러니 이 해석의 문제는 대담함에 있지 않다. 고고학에는 검증하기 어려운 주장이 많고, 발굴단 자신의 해석도 그렇다. 차이는 어떤 관측이 나오면 자기 주장을 버릴 것인지를 밝히는가에 있다. 클레어는 2026년 논문에서 자기 모델이 인과를 주장할 수 없다고 명시했고, 2024년 논문에서는 H자 기호의 뜻을 정하지 않은 채로 두었다. 스웻먼과 치크리치스의 답변에는 그런 문장이 없다. 어떤 새 자료가 나오면 이 해석이 틀린 것이 되는지, 그 조건이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다.

학술지 게재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도 않는다. 2017년 논문과 반론과 재답변이 모두 같은 학술지에 실렸고, 2024년 논문도 동료심사를 거쳐 실렸다. 심사를 통과했다는 사실이 말해 주는 것은 그 글이 학계의 토론 대상이 되었다는 것까지다. 언론 보도가 생략하는 것이 정확히 이 구분이다. 2024년 여름의 기사들은 논문의 결론을 전했고, 같은 학술지에 7년 전에 실린 반론과 그 뒤의 지붕 증거와 편년 재구성은 전하지 않았다.

남는 문제는 이 유적의 조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다. 43번 기둥의 V자 기호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미정이고, 이 상태는 새 기둥이 열 개 더 나와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자가 없고 구전이 남지 않은 자료에서 의미를 읽어내는 작업은 어느 방향으로 가든 검증 조건을 스스로 만들어 붙여야 한다. 셀 대상을 먼저 규정하고 그 규정을 다른 기둥과 다른 유적에 적용해 결과를 보이는 것이 그 한 방법이고, 벌리가 마지막 문단에서 요구한 정량적 공간 분석도 같은 종류의 요구다. 그런 절차가 제시되기 전까지, 이 기둥이 달력이라는 문장과 이 기둥이 달력이 아니라는 문장은 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