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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에는 어떻게 들어갔는가 — 경로를 두고 어긋나는 세 갈래 자료

진입 시점이 앞당겨질수록 내륙 통로는 설명력을 잃는다. 연안 경로는 시점이 맞지만 검증할 유적이 바다에 잠겨 있고, 유전학은 또 다른 연대를 내놓는다.

2026년 9월 12일

언제보다 어려운 물음

사람이 아메리카에 언제 들어갔는지는 오랫동안 논쟁의 중심이었다. 20세기 내내 통설은 1만 3천 년 전 클로비스 문화가 최초라는 것이었고, 지금은 그보다 훨씬 이르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뉴멕시코 화이트샌즈의 발자국이 2만 3천~2만 1천 년 전으로 세 차례 확인됐고, 이보다 이른 주장도 여럿 나와 있다.

그런데 시점이 앞당겨질수록 다른 물음이 어려워진다. 어떤 경로로 들어갔는가다. 후보는 둘이다. 북아메리카를 덮은 두 빙상 사이로 열린 내륙 통로와,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내려온 바닷길이다. 두 경로는 각각 다른 시점에 통행이 가능해졌고, 시점을 앞당길수록 내륙 통로 쪽이 설명력을 잃는다.

지형과 이름 베링기아는 빙하기에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드러난 시베리아 동북부와 알래스카 사이의 육지와 그 주변 지역을 함께 부르는 이름이다. 지금은 베링 해협 아래 잠겨 있다. 로렌타이드 빙상은 캐나다 동부와 중부를 덮었고, 코르디예라 빙상은 로키산맥 서쪽을 덮었다. 두 빙상이 물러나면서 그 사이에 남북으로 열린 길을 무빙 회랑이라 부른다. 유콘 강 유역에서 낮은 분수계를 넘어 매켄지 강 유역에 들어선 다음 앨버타와 서스캐처원 북부로 내려가는 경로다. 최종빙기 최성기는 빙상이 가장 넓었던 시기로 약 2만 6천 년 전이다.

내륙 통로가 열린 시점

클로비스 우선설은 내륙 통로를 전제로 성립했다. 빙상이 물러나 길이 열리자 사람들이 매머드와 들소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왔고, 그들이 남긴 것이 클로비스 첨두기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 생긴 균열은 두 방향에서 왔다. 하나는 통로가 언제 실제로 지나갈 만해졌는가다. 빙상이 물러나 지형상 길이 뚫리는 것과, 그 길에 식물과 동물이 자리잡아 사람이 이동하며 먹고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다른 시점이다. 퇴적물에 남은 환경 DNA와 고생태 자료를 분석한 연구는 유콘에서 매켄지를 거쳐 남쪽으로 이어지는 내륙 경로가 약 1만 2천 600년 전에야 통행 가능해졌다고 보았다. 그보다 이르다고 보는 연구도 있지만 차이는 크지 않다.

다른 하나는 남쪽의 유적 연대다. 칠레 몬테베르데의 연대가 1만 4천 500년 전으로 확정되면서 통로가 열리기 전에 남아메리카에 사람이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통로가 아니라면 다른 길이 있어야 한다.

내륙 통로를 지지하는 쪽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 있다. 무빙 회랑을 따라 클로비스보다 이른 유적이 한 곳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안 경로와 켈프 하이웨이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태평양 연안 경로다. 존 얼랜슨 연구진이 정리한 켈프 하이웨이 가설이 대표적이다.

논지는 생태에 있다. 다시마 숲은 북태평양 연안의 바위 해안을 따라 거의 끊기지 않고 이어지며, 지구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생태계에 속한다. 조개와 물고기와 해양 포유류와 바닷새와 식용 해조가 그 안에 밀집한다. 일본 북부에서 캄차카를 지나 알류샨 열도와 알래스카를 거쳐 북아메리카 서해안으로 내려가는 동안 식단과 생계 방식을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 가설의 핵심이다. 배를 쓰면 걷는 것보다 훨씬 빨리 이동할 수 있으므로 아메리카 전체에 빠르게 퍼진 것도 설명된다.

연구진은 약 1만 6천 년 전이면 북태평양 연안에 해수면 높이로 이어지는 연속된 길이 있었다고 본다.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오르던 시기여서 베링기아 남쪽 해안은 섬이 많고 굴곡이 심한 지형이었고, 배를 타고 다니며 바다에서 먹고사는 집단에게는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었다.

이 가설의 약점은 검증이다. 당시의 해안선은 지금 수백 미터 아래 바다에 잠겨 있다. 북아메리카 태평양 연안에서 1만 6천 년 전보다 이른 유적은 한 곳도 확인되지 않았고, 확인된 가장 이른 해안 유적은 홀로세 초기에 속한다.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는 말이 여기서는 특히 무겁게 걸린다. 유적이 있었다면 지금 바다 밑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학이 요구하는 공백

세 번째 축은 유전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전체는 아시아 집단에서 갈라졌지만, 가장 가까운 시베리아 집단과도 구별되는 변이를 가지고 있다. 그 변이가 쌓이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 동안 집단이 양쪽 어디와도 유전자를 거의 주고받지 않았어야 한다.

여기서 나온 것이 베링기아 정체 가설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이 시베리아를 떠난 뒤 곧바로 남하하지 않고 베링기아에 머물며 유전적으로 격리됐다는 설명이다. 시베리아 동북부에 3만 년 전 사람이 있었고 아메리카로 퍼진 것이 대략 1만 5천 년 전이라면, 그 사이에 최대 1만 5천 년의 격리 기간이 들어간다. 아메리카 원주민 조상과 고대 베링기아 집단이 갈라진 시점은 유전체 분석으로 약 2만 1천 년 전으로 계산됐다.

이 가설은 고고학에 구체적인 요구를 건다. 격리 기간 동안 사람이 베링기아 어딘가에 살고 있었어야 하므로, 그 시기 그 지역에 유적이 있어야 한다. 텍사스 A&M의 켈리 그래프와 이언 부빗은 시베리아와 베링기아의 후기 구석기 자료를 모아 이 요구를 검토했고, 모형의 기대가 모두 충족되지는 않는다고 보고했다(Current Anthropology 58권 S17호). 최종빙기 최성기에 베링기아 내륙에 사람이 살았다는 고고학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다.

대안은 격리 장소를 내륙 바깥으로 옮기는 쪽이다. 베링기아 남쪽 해안의 섬들, 곧 해수면이 낮았을 때 드러났다가 지금은 잠긴 열도가 후보다. 최종빙기 최성기에 베링기아 내륙 집단은 시베리아 이웃들처럼 그 지역에서 물러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리고 두 집단 사이에 오간 제한된 유전자 흐름이 이동성 높은 수렵 집단보다 서로 다른 섬에 떨어져 있던 상태로 더 잘 설명된다는 점이 근거다.

화이트샌즈가 만드는 어긋남

화이트샌즈 발자국의 2만 3천~2만 1천 년 전 연대가 확정되면 위의 모든 그림이 다시 어긋난다. 그 시기는 최종빙기 최성기의 한가운데이고, 내륙 통로는 완전히 막혀 있었으며, 유전학이 말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조상의 분기 시점보다도 이르다.

유전학 쪽의 입장은 분명하다. 1만 5천 년 전 이전에 아메리카에 사람이 있었다는 설득력 있는 유전 증거는 지금까지 없다. 오늘날 아메리카 원주민의 유전체에서 그보다 이른 갈래가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두 자료를 함께 설명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먼저 들어간 집단이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고 보면 된다. 치키위테 동굴을 발굴한 시프리안 아르델레안이 이 해석을 편다. 화이트샌즈나 치키위테에 있던 사람들은 오늘날 인구에 기여하지 않았으므로 유전체에 잡히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 설명은 아프리카 밖 진출에서 이미 확인된 구조와 같다. 이스라엘 미슬리야 동굴의 사피엔스는 17만 년 전 이전에 그곳에 있었지만 오늘날 인구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 진출과 정착은 다른 사건이며, 앞선 진출이 끊기는 일은 드물지 않다.

다만 이 해석에는 확인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후손을 남기지 않았다는 설명은 유전 증거의 부재를 그대로 흡수하므로, 어떤 유전 자료로도 반박되지 않는다. 그래서 판정은 고고학 자료의 신뢰도로 돌아온다.

치키위테 동굴

멕시코 아스티예로 산맥 해발 2천 740미터에 있는 치키위테 동굴에서는 석기 약 2천 점이 나왔고, 그중 239점이 2만 5천~3만 2천 년 전으로 연대측정된 자갈층에 박혀 있었다(아르델레안 외, 2020, Nature). 아르델레안은 가장 오래된 석기가 239점에 그친다는 점을 근거로, 이곳을 상주 거주지보다 수십 년에 한 번씩 혹독한 겨울에 쓰인 피난처로 본다.

반론은 석기로 제시된 것들이 실제로 사람이 만든 것인지를 문제 삼는다. 동굴 안의 돌 조각이 자연적으로 깨져 생긴 형태와 구분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논쟁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2026년 몬테베르데 논쟁

2026년 3월, 이 분야에서 가장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던 유적의 연대가 정면으로 반박됐다.

칠레 남부 푸에르토몬트에서 58킬로미터 떨어진 몬테베르데는 1970년대에 발견됐고, 1997년 검증 작업을 거쳐 1만 4천 500년 전으로 확정됐다. 클로비스보다 1천 500년 이른 연대였고, 클로비스 우선설을 무너뜨린 결정적 유적으로 꼽혔다.

와이오밍 대학의 토드 수로벨 연구진은 50년 만의 첫 독립 조사에서 다른 결론을 냈다(수로벨 외, 2026, Science). 세 가지 연대측정법을 쓰고 유적뿐 아니라 상류와 하류의 같은 지형면에서도 시료를 뽑은 결과, 몬테베르데 2 지점의 연대가 4천 200~8천 200년 전으로 나왔다.

핵심은 화산재층이다. 약 1만 1천 년 전의 분화로 이 일대에 레푸에 테프라라는 화산재가 덮였다. 수로벨 연구진은 이 테프라를 하천을 따라 여러 지점에서 확인했고, 어느 시점에 침식이 유적을 가로지르는 물길을 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몬테베르데 2는 주변 단구보다 낮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테프라 위에 형성된 것이 되고, 1만 1천 년보다 젊어진다.

반박은 즉각적이었다. 50년간 이 유적을 연구해 온 밴더빌트 대학의 톰 딜레헤이는 몬테베르데 2 아래에 1만 1천 년 된 화산재층은 없다고 답했다. 서던메소디스트 대학의 데이비드 멜처는 수로벨 연구진의 조사가 유적 자체에서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유적 내부의 상황에 대해 말해 주는 바가 적다고 지적했다. 2026년 5월 4일과 5일, 연구자 30명이 참여한 세 편의 논평이 Science에 실렸다. 딜레헤이 연구진은 지형학과 고고학 증거가 1만 4천 500년 전 점유를 뒷받침한다는 반론을, 멜처 연구진은 유전 증거 쪽의 반론을, 마이클 워터스 연구진은 중기 홀로세라는 주장에 대한 지질고고학적 평가를 각각 실었다.

수로벨은 2022년 PLOS ONE에 실은 연구에서 이미 비슷한 주장을 폈다. 프리드킨, 골트, 쿠퍼스 페리처럼 클로비스보다 이르다고 알려진 유적들에서 위층의 유물과 유기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현상 때문에 연대가 실제보다 오래 나왔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멜처와 딜레헤이는 몬테베르데의 연대가 어떻게 결론나든 전체 그림은 바뀌지 않는다고 본다. 클로비스보다 이른 유적이 몬테베르데 하나가 아니고, 내륙 통로가 열리기 전에 사람이 남쪽에 있었다는 점을 다른 유적들도 지지한다는 것이다. 수로벨은 이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료를 신뢰도별로

유적주장 연대상태
치키위테 동굴(멕시코)3만 2천~2만 5천 년 전석기의 인공성 자체가 다툼
화이트샌즈(미국)2만 3천~2만 1천 년 전세 종류 시료로 연대 확인, 인공물 부재가 쟁점
블루피시 동굴(캐나다)2만 4천 년 전사람의 흔적인지 다툼
쿠퍼스 페리(미국)1만 6천 년 전하향 이동 가능성 제기됨
몬테베르데 2(칠레)1만 4천 500년 전2026년 재연대 주장과 30인의 반박이 대립
클로비스 유적군1만 3천 년 전연대 안정

표를 보면 논쟁의 성격이 드러난다. 오래된 유적일수록 다투는 대상이 연대에서 유물의 인공성 쪽으로 옮겨 간다. 화이트샌즈는 발자국이므로 사람이 남긴 것인지를 다툴 여지가 없고, 그래서 논쟁이 연대에 집중됐다가 세 차례 검증으로 좁혀졌다. 치키위테는 반대로 연대는 측정 가능하지만 그 층에서 나온 돌이 석기인지가 문제다.

결론 — 시점보다 경로에서 자료가 어긋난다

아메리카 진입 시점은 클로비스 우선설이 무너진 뒤 최소 1만 6천 년 전으로 내려갔고, 화이트샌즈를 인정하면 2만 3천 년 전이 된다. 그런데 경로 쪽 자료는 이 시점과 잘 맞지 않는다. 내륙 무빙 회랑은 1만 2천 600년 전에야 통행 가능해졌으므로 그보다 이른 남쪽 유적을 설명하지 못하고, 그 경로를 따라 클로비스보다 이른 유적이 한 곳도 나오지 않았다. 태평양 연안 경로는 시점상 맞지만 당시 해안선이 바다에 잠겨 검증 자료가 없다. 유전학은 2만 1천 년 전의 분기와 1만 5천 년 전의 확산을 말하는데, 그보다 이른 고고학 자료가 계속 보고된다.

세 갈래 자료가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 이유는 각각이 다른 것을 재기 때문이다. 유전체는 오늘날 사람에게 이어진 계통만 기록하고, 고고학은 흔적이 보존된 지점만 기록하며, 고생태학은 지나갈 수 있었던 시기만 기록한다. 후손을 남기지 못한 집단, 바다에 잠긴 유적, 지나갈 수 있었지만 지나가지 않은 길은 셋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2026년의 몬테베르데 논쟁은 이 분야의 자료가 얼마나 얇은 층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준다. 50년 동안 표준으로 쓰이던 연대가 첫 독립 조사에서 통째로 반박됐고, 그에 대해 서른 명이 반박문을 냈다. 어느 쪽이 옳든 남는 교훈은 하나다. 오래된 유적의 연대는 독립적으로 재검증돼야 하고, 그 작업이 지금까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앞으로 확인될 지점은 수몰 해안이다. 연안 경로 가설을 검증하려면 지금 바다 아래 있는 당시의 해안선을 조사해야 한다. 음향 탐사로 옛 해안 지형을 복원하고 퇴적물 시추로 환경 DNA를 읽는 작업이 북태평양 여러 곳에서 진행 중이다. 1만 6천 년 전보다 이른 연안 유적이 한 곳이라도 확인되면 경로 논쟁의 무게가 옮겨 간다. 반대로 몬테베르데의 재연대가 받아들여지면 남아메리카의 이른 점유를 받치는 축이 하나 빠지고, 논쟁은 화이트샌즈로 다시 모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