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신 숭배의 자취는 구약 곳곳에 있다. 다만 자취마다 근거의 강도가 다르고, 금지 조항이 가장 많아지는 시기는 그 숭배가 가장 성행한 시기와 겹친다.
2019년 이스라엘 중부 텔 하디드에서 지름 2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는 인장이 하나 나왔다. 텔 하디드는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사이 벤셰멘 숲에 있는 유적이다. 인장이 나온 자리는 토기 조각과 짐승 뼈, 석기, 재가 섞인 기원전 7세기 쓰레기 구덩이였다. 텔아비브대학교의 이도 코흐 연구진은 2026년 학술지 『레반트』에 이 유물을 보고했다. 재질이 자개였는데, 조개껍데기 안쪽의 진주층을 깎아 만든 인장은 남부 레반트에서 지금까지 보고된 적이 없다. 인도·태평양산 조개이며, 새김 선이 얕아 실제로 눌러 찍기보다 목에 걸고 다닌 부적에 가까웠으리라고 연구진은 본다.
인장 면에 새겨진 그림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삼각형 받침대 위에 초승달이 얹혀 있고, 그 앞에 팔을 든 사람 형상이 있으며, 왼쪽에는 제단으로 보이는 형태가 있다. 연구진은 이것을 초승달 깃대 문양으로 판정했다. 메소포타미아 북부 도시 하란의 달신 신(Sin)을 나타내는 표상이며, 기원전 8세기와 7세기 신아시리아 제국 전역의 인장과 문서에 널리 쓰였다. 가까운 텔 게제르에서 나온 기원전 7세기 토판에도 같은 계열의 문양이 찍혀 있고, 예루살렘 북쪽 묘역에서도 비슷한 도상이 나왔다.
텔 하디드는 기원전 8세기 말 아시리아가 북이스라엘 왕국을 무너뜨린 뒤 제국의 속주 체계에 편입된 지역이다. 인장이 나온 동네에서 아시리아 행정 서식으로 작성된 쐐기문자 토판들이 함께 나왔고, 그중 하나에는 기원전 664/663년이라는 연대가 적혀 있다. 여호와 신앙의 본거지 한복판에서 달신의 표상이 부적으로 쓰였다는 뜻이다.
이 물건 하나가 성경 본문을 해석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물음은 만든다. 구약 성경에는 달신 숭배의 흔적이 남아 있는가. 남아 있다면 어떤 형태이며, 어디까지가 확인된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추측인가. 아래에서 확인하려는 논지는 하나다. 구약은 달신 숭배를 지운 기록이라기보다, 달신의 상징과 낱말과 달력을 물려받은 채 그것을 여호와 아래 피조물의 자리로 재배치한 기록이며, 달 숭배를 금지하는 조항이 가장 많아지는 시기는 그 숭배가 가장 성행한 기원전 8~7세기다.
먼저 배경이 필요하다. 고대 근동은 오늘날의 이라크, 시리아, 튀르키예 남동부,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일대를 아우르는 고대 문명권을 가리킨다. 이 지역에서 달은 거의 모든 민족이 신으로 섬긴 천체였고, 이름은 언어권마다 달랐다.
메소포타미아 남부의 수메르어 이름은 난나였고, 셈족 언어인 아카드어로는 수엔 또는 신이라 불렸다. 두 이름 모두 문자 기록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나타나며 서로 바꿔 쓰였다. 이름의 어원은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다. 달신은 도시 우르의 수호신이었고, 초기 왕조 시대의 신 목록에서는 안, 엔릴, 이난나, 엔키라는 네 최고신 바로 다음에 놓였다. 우르의 지구라트, 곧 계단식 신전탑도 우르남마 왕이 이 달신을 위해 세웠다. 이 정리는 애덤 스톤이 옥스퍼드·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쐐기문자 자료 공개 사업인 오라크(Oracc)의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들」 항목에 2019년 실은 서술을 따랐다.
여기서 오해 하나를 먼저 치워야 한다. 달신의 이름 '신'은 영어 낱말 sin(죄)과 아무 관계가 없다. 두 말이 닮은 것은 우연이며, 영어권 느헤미야서 주석 일부가 이 둘을 혼동해 왔다고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 히브리어 사전 계열의 정리가 지적한다.
달신의 상징은 초승달이었고, 짐승으로는 황소였다. 초승달이 옆으로 누우면 황소의 뿔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 연상에서 달신을 소 떼를 치는 목자로 그리는 문학이 나왔고, 수메르어 작품 「난나의 가축 떼」는 대부분의 분량을 그의 소 떼를 세는 데 쓴다. 달신은 출산과도 연결되었다. 고바빌로니아 시대의 출산 주문과, 달신의 암소 게메신의 해산을 달신이 도왔다는 주술 의료 문서가 남아 있다. 판결과 점술도 그의 몫이었다. 초기 왕조 시대의 「독수리 비석」에서 맹세는 수엔 앞에서 이루어졌고, '운명을 점치는 자'라는 칭호가 근동 전역에서 그에게 붙었다.
서쪽으로 가면 이름이 바뀐다. 시리아 북부 해안 도시 우가리트에서 달신은 야리크였다. 이 이름은 우가리트어에서 신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천체인 달을 가리키는 보통명사이고, '한 달'이라는 기간도 뜻한다. 히브리어 ירח(예라흐, 야레아흐)도 같은 어근이며 뜻이 같다. 페니키아어, 고대 아람어, 팔미라 아람어, 나바테아 아람어에 모두 같은 낱말이 있고, 아카드어 warḫum(달, 한 달)도 같은 계열이다. 가브리엘레 토이어는 2000년 연구서 『시리아·팔레스타인 종교들의 달신』에서 우가리트 문서를 분석해, 야리크가 이 도시의 만신전과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반면 달의 여신 니칼의 비중은 그보다 작았다고 정리했다.
후르리인은 같은 신을 쿠슈흐라 불렀고, 아람인은 사하르라 불렀다. 우가리트의 서사시 「니칼과 야리크의 혼인」(KTU 1.24)은 달신 야리크가 달의 여신 니칼과 혼인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작품인데, 니칼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달신의 아내였던 여신 닝갈이 이름을 바꿔 들어온 신이다. 토이어는 이 작품과 우가리트의 신 목록, 제의 문서를 함께 검토해 달신이 혼인과 다산과 출산에 연결되었고, 초승달로 나타날 때는 죽음과 저승에도 연결되었다고 정리했다.
하란은 이 대목에서 특히 중요하다. 튀르키예 남동부 우르파 남동쪽에 있던 이 도시는 고바빌로니아 시대부터 달신의 제의 중심지였고, 신전 이름은 '기쁨의 집'이라는 뜻의 에훌훌이었다. 하란은 아시리아 제국의 서쪽 변경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고, 이 위치 덕분에 하란의 달신은 서쪽 레반트 지역으로 퍼졌다. 기원전 7세기 아람어 비문 두 점이 그 증거다. 시리아 알레포 남동쪽 네랍에서 1891년에 나온 두 제사장의 장례 비석인데, 비석의 주인들은 아카드어로 된 '신' 계열의 이름을 쓰면서도 달신을 서셈족 이름인 사하르로 불렀다. 시 가바리라는 제사장의 비문은 무덤을 터는 자에게 사하르와 니칼과 누스크가 비참한 죽음을 내리기를 빈다.
성경이 무대로 삼는 땅 안에서도 달 숭배의 물증이 나왔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하솔이다. 하솔은 여호수아 11장 10절이 '이 모든 나라의 머리'라고 부르는 가나안 도시이며, 갈릴리 북쪽에 있다. 1950년대에 이가엘 야딘이 이끈 발굴대는 낮은 언덕 서쪽의 이른바 '석비 신전'에서 현무암 석비 열 점과 부속 유물을 찾아냈다. 석비들은 기원전 13세기 것이고, 가운데 석비에는 두 팔을 위로 들어 올린 형상이 새겨져 있으며 그 위에 초승달과 원반이 겹쳐진 표시가 있다. 원반과 초승달을 겹친 이 표시는 보름달과 초승달을 함께 나타내는 달신의 상징으로 읽힌다. 석비들 앞에는 제물 상이 있었고, 옆에는 사자 형상을 새긴 돌과 잔을 든 채 앉아 있는 작은 조각상이 있었다. 이 조각상의 머리는 몸통과 따로 떨어진 채 발견되었고, 잘려 나간 흔적이 있다.
기원전 8세기 자료로는 벳새다 석비가 있다.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 북쪽의 유적으로, 사무엘하에 나오는 아람계 소왕국 그술의 수도로 추정된다. 1996년 이후의 발굴에서 성문 앞 제단 위에 서 있던 현무암 석비가 나왔다. 높이 1.15미터, 폭 59센티미터, 두께 31센티미터이며, 앞면에 뿔 달린 황소 머리 형상이 단검을 찬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뿔은 안쪽으로 휘어 초승달 모양을 이룬다. 모니카 베르네트와 오트마르 켈이 1998년에 이 석비를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여기서 판단이 둘로 나뉜다. 이 황소 형상이 달신인가, 폭풍신 하닷인가, 아니면 둘의 속성이 섞인 것인가. 타리 오르난은 2001년 『이스라엘 탐사 저널』 51권에 실은 논문 「황소와 두 주인」에서 달신과 폭풍신이 근동 미술에서 같은 짐승을 공유한 현상을 다루면서, 한 상징을 여러 신이 나누어 쓰는 것은 다신교 신학에서 모순이 아니라고 정리했다. 여러 신이 같거나 비슷한 영역을 동시에 다스린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벳새다 석비를 두고 '달신 석비'라고 단정하는 서술과 '폭풍신 석비'라고 단정하는 서술은 둘 다 자료가 허용하는 범위를 넘는다.
한국어 연구로는 강승일이 2011년 『구약논단』 17권 4호에 실은 「고대 이스라엘의 달신 숭배와 그 배경」이 있다. 이 논문은 하솔 석비, 벳새다의 황소머리 형상, 그리고 이스라엘식 이름이 새겨진 달 상징 인장들을 함께 놓고, 고대 이스라엘의 민간 신앙에서 달신 숭배가 실제로 행해졌다고 논증한다.
본문으로 넘어간다. 구약에서 달 숭배의 가장 확실한 흔적은 그것을 금지하는 조항들이다. 금지 조항은 금지할 행위가 실제로 있었음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신명기 4장 19절은 하늘을 쳐다보고 해와 달과 별에게 절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아래 히브리어 본문은 레닌그라드 사본에 기초한 마소라 본문(WLC)에서 가져왔다. 이 사본은 비평판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BHS)가 대본으로 삼은 것과 같은 필사본이다.
וּפֶן־תִּשָּׂא עֵינֶיךָ הַשָּׁמַיְמָה וְרָאִיתָ אֶת־הַשֶּׁמֶשׁ וְאֶת־הַיָּרֵחַ וְאֶת־הַכּוֹכָבִים כֹּל צְבָא הַשָּׁמַיִם וְנִדַּחְתָּ וְהִשְׁתַּחֲוִיתָ לָהֶם וַעֲבַדְתָּם אֲשֶׁר חָלַק יְהוָה אֱלֹהֶיךָ אֹתָם לְכֹל הָעַמִּים תַּחַת כָּל־הַשָּׁמָיִם׃
우펜 티사 에네카 하샤마이마 웨라이타 에트 하셰메시 웨에트 하야레아흐 웨에트 하코카빔 콜 체바 하샤마임 웨니다흐타 웨히시타하위타 라헴 와아바드탐 아셰르 할라크 아도나이 엘로헤카 오탐 레콜 하암밈 타하트 콜 하샤마임
또 네가 하늘로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곧 하늘의 온 군대를 보고 끌려가 그것들에게 엎드려 섬기지 않도록 하라. 그것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온 하늘 아래 모든 민족에게 나누어 주신 것이다.
신명기 4장 19절, 레닌그라드 사본 기반 마소라 본문. 한국어는 직접 옮김.
같은 책 17장 2~5절은 한 걸음 더 나간다. 해나 달이나 하늘의 군대를 섬긴 사람은 성문 밖으로 끌어내 돌로 쳐 죽이라고 규정한다. 종교 규범이 형법 조항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며, 실행 가능한 범죄로 취급되었다는 뜻이다.
욥기 31장 26~28절은 관습의 동작까지 알려 준다. 욥은 자기가 하지 않은 죄를 하나씩 열거하는데, 그중에 달을 향한 경배가 들어 있다.
אִם־אֶרְאֶה אוֹר כִּי יָהֵל וְיָרֵחַ יָקָר הֹלֵךְ׃ וַיִּפְתְּ בַּסֵּתֶר לִבִּי וַתִּשַּׁק יָדִי לְפִי׃
임 에르에 오르 키 야헬 웨야레아흐 야카르 홀레크 / 와이프트 바세테르 리비 와티샤크 야디 레피
내가 빛나는 해를 보거나 달이 환하게 떠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몰래 끌려 손으로 입을 맞추었다면.
욥기 31장 26~27절, 레닌그라드 사본 기반 마소라 본문. 한국어는 직접 옮김.
마지막 구절의 히브리어는 직역하면 '내 손이 내 입에 입 맞추었다'이다. 손을 입에 대었다가 대상을 향해 내미는 경배 동작을 가리킨다. 28절은 이것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부인한 것'이므로 재판관이 벌할 죄라고 못 박는다. 하지 않은 일을 열거하는 형식이지만, 그 동작이 무엇인지 설명 없이 통하려면 독자가 이미 알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행해졌다는 기록도 있다. 유다 왕 므낫세는 성전의 두 뜰에 하늘의 군대를 위한 제단을 쌓았다(열왕기하 21장 3~5절). 그 손자 요시야는 기원전 622년 무렵의 종교 개혁에서 이 제의를 폐지했다.
וְהִשְׁבִּית אֶת־הַכְּמָרִים אֲשֶׁר נָתְנוּ מַלְכֵי יְהוּדָה וַיְקַטֵּר בַּבָּמוֹת בְּעָרֵי יְהוּדָה וּמְסִבֵּי יְרוּשָׁלִָם וְאֶת־הַמְקַטְּרִים לַבַּעַל לַשֶּׁמֶשׁ וְלַיָּרֵחַ וְלַמַּזָּלוֹת וּלְכֹל צְבָא הַשָּׁמָיִם׃
웨히시비트 에트 하케마림 아셰르 나테누 말케 예후다 와예카테르 바바모트 베아레 예후다 우메시베 예루샬라임 웨에트 하메카트림 라바알 라셰메시 웨라야레아흐 웨라마잘로트 울콜 체바 하샤마임
그는 유다 왕들이 세워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주변 산당에서 분향하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고, 바알과 해와 달과 별자리와 하늘의 온 군대에게 분향하던 자들도 폐하였다.
열왕기하 23장 5절, 레닌그라드 사본 기반 마소라 본문. 한국어는 직접 옮김.
예레미야 8장 2절은 이 숭배자들에게 내릴 벌을 말한다. 그들의 뼈가 그들이 사랑하고 섬기고 따라다니고 구하고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온 군대 앞에 흩어지리라고 한다. 같은 책 19장 13절은 예루살렘의 집 지붕마다 하늘의 군대에게 분향했다고 적고, 스바냐 1장 5절도 지붕 위에서 하늘의 군대에게 절하는 자들을 지목한다. 지붕은 하늘이 잘 보이는 곳이고 살림집의 일부다. 왕실 제의를 넘어 가정 단위에서도 행해졌다는 뜻이다.
위에 모은 본문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시기가 한쪽으로 쏠려 있다. 신명기 계열의 법 조항, 열왕기하의 므낫세와 요시야 기사, 예레미야와 스바냐의 고발은 모두 기원전 8세기 말에서 6세기 사이의 유다를 배경으로 삼는다. 강승일은 앞의 논문에서 달 제의를 규탄하는 성경 자료가 포로기 직전이나 그 이후에 속한다고 정리하고, 이것이 기원전 7세기 이후 달 숭배가 크게 퍼졌다는 뜻이라고 본다.
고고학 자료도 같은 시기를 가리킨다. 강승일에 따르면 천체 상징이 새겨진 인장의 대다수는 기원전 730년에서 630년 사이의 것이다. 토이어는 앞의 연구서에서 기원전 9세기에서 6세기까지, 특히 8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유다와 예루살렘에서도 달 숭배가 성행했고 여러 점의 인장이 그 증거라고 정리했다. 그가 꼽은 원인은 둘이다. 하나는 유다에 미친 아시리아·아람계의 영향이고, 다른 하나는 이 지역에 원래 있던 토착 달 제의다.
개별 유물도 이 시기에 몰린다. 크리스토프 우엘링어, 아리엘 빈더바움, 예히엘 젤링어는 2023년에 예루살렘 북쪽 묘역인 가든 톰 구역에서 나온 기원전 7세기 원통 인장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인장에 새겨진 것은 하란 달신의 제의 표상을 경배하는 장면이며, 연구진은 이것을 므낫세 왕 시대 남부 레반트 종교사의 자료로 다룬다. 앞서 본 텔 하디드의 자개 인장도 같은 7세기이고, 텔 게제르의 토판도 그렇다.
여기서 통념 하나가 흔들린다. 성경 본문만 읽으면 달 숭배는 아득한 옛날 가나안의 관습이고 이스라엘은 정착 초기부터 그것과 싸워 온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본문의 연대와 유물의 연대를 겹쳐 놓으면 다른 그림이 나온다. 달 숭배를 가장 강하게 규탄한 시기가 바로 그것이 가장 널리 퍼진 시기다. 토이어가 원인을 둘로 나눈 것도 이 관찰에서 나온다. 유다의 달 숭배를 아시리아·아람계의 유입만으로 설명하면 규탄 본문의 격렬함이 설명되지만 토착 제의의 존재가 지워지고, 토착 제의만으로 설명하면 하필 8~7세기에 자료가 몰리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시기가 아시리아 지배기와 겹치므로 다음 물음이 따라온다. 제국이 속국에 자기 신을 강요했는가.
이 문제를 두고 연구가 나뉜다. 존 매케이의 1973년 책 『아시리아 치하 유다의 종교』와 모튼 코건의 1974년 책 『제국주의와 종교: 기원전 8~7세기의 아시리아, 유다, 이스라엘』은 강요를 부정하는 쪽으로 정리했고, 헤르만 슈피커만이 1982년 책 『사르곤 왕조 시대 아시리아 치하의 유다』에서 반대 입장을 세웠다. 이후의 연구는 이 두 입장 사이에서 움직인다. 세 책 모두 아시리아 왕실 비문과 조약 문서를 열왕기 본문과 대조한 문헌 연구이며, 다루는 범위는 기원전 8~7세기 아시리아와 유다·이스라엘의 관계다. 통계 표본을 다루는 연구가 아니므로 결론의 강도는 자료 해석에 달려 있다.
강승일은 앞의 논문에서 아시리아가 속국에 종교적 의무를 부과하지는 않았다고 보고, 그럼에도 팔레스타인에 제국이 주둔한 상황이 유다 왕들로 하여금 아시리아·아람계 종교 관행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으리라고 본다. 이것을 그는 기원전 7세기 유다에서 달신 숭배가 되살아난 배경으로 본다.
이 구별은 성경 본문을 읽는 방식을 바꾼다. 강요였다면 열왕기의 고발은 제국에 대한 저항 문서로 읽힌다. 자발적 수용이었다면 같은 고발은 자기 사회 내부를 향한 문서가 된다. 열왕기하 23장 5절이 폐지한 대상은 '유다 왕들이 세운' 제사장들이다. 본문 자체가 책임을 유다 왕실에 돌린다.
구약의 히브리어 자체에도 흔적이 있다. 히브리어에서 달을 가리키는 보통명사 야레아흐는 우가리트에서 달신의 이름이었던 그 낱말과 같은 어근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사람이 '달'이라고 말할 때 쓰는 낱말은 이웃 문화에서 신의 이름이었다.
창세기 1장 16절이 이 사정과 관련해 자주 인용된다. 넷째 날 기사는 해와 달을 만들면서 셰메시(해)나 야레아흐(달)라는 보통명사를 쓰지 않는다.
וַיַּעַשׂ אֱלֹהִים אֶת־שְׁנֵי הַמְּאֹרֹת הַגְּדֹלִים אֶת־הַמָּאוֹר הַגָּדֹל לְמֶמְשֶׁלֶת הַיּוֹם וְאֶת־הַמָּאוֹר הַקָּטֹן לְמֶמְשֶׁלֶת הַלַּיְלָה וְאֵת הַכּוֹכָבִים׃
와야아스 엘로힘 에트 셰네 하메오로트 하게돌림 에트 하마오르 하가돌 레멤셸레트 하욤 웨에트 하마오르 하카톤 레멤셸레트 하라일라 웨에트 하코카빔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시고, 큰 광명체는 낮을 다스리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는 밤을 다스리게 하시고, 별들도 만드셨다.
창세기 1장 16절, 레닌그라드 사본 기반 마소라 본문. 한국어는 직접 옮김.
널리 통용되는 설명은 이렇다. 셰메시와 야레아흐가 이웃 문화에서 신의 이름이기도 했으므로 저자가 의도적으로 피했고, 해와 달을 하나님이 만든 발광체로 낮추었다고 본다.
이 설명에는 검토할 대목이 있다. 여기 쓰인 낱말 마오르(מָאוֹר)는 '빛을 내는 물체'를 뜻하는데,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 낱말이 쓰이는 다른 자리는 성막의 등잔이다. 등잔 기름(출애굽기 25장 6절, 27장 20절, 35장 8절, 레위기 24장 2절), 등잔대(출애굽기 35장 14절, 39장 37절, 민수기 4장 9절과 16절)가 그것이다.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 사전은 이 용례들이 모두 제사장 문서 계열이라고 표시한다. 창세기 1장도 같은 계열이다. 그러므로 '큰 광명체'라는 표현은 신의 이름을 피하려는 회피이기도 하지만, 같은 저자 집단이 성소의 등잔을 부를 때 쓰던 낱말을 하늘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기도 하다. 해와 달을 켜 놓은 등잔으로 부르는 서술이 된다. 두 설명은 서로 배척하지 않으며, 본문이 어느 쪽을 의도했는지 밝히지는 않는다.
모세의 축복이라 불리는 신명기 33장에는 다른 종류의 흔적이 있다. 요셉 지파를 축복하는 대목에서 해와 달이 나란히 등장한다.
וּמִמֶּגֶד תְּבוּאֹת שָׁמֶשׁ וּמִמֶּגֶד גֶּרֶשׁ יְרָחִים׃
우미메게드 테부오트 샤메시 우미메게드 게레시 예라힘
해가 내는 소출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달들이 내놓는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신명기 33장 14절, 레닌그라드 사본 기반 마소라 본문. 한국어는 직접 옮김.
'게레시'는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 자리에만 나오는 낱말이고,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 사전은 '밀어내 놓은 것, 소출'로 새긴다. '예라힘'은 야레아흐의 복수형으로 달 또는 달(月)을 뜻한다. 고대 근동의 시가에서 해와 달을 짝지어 소출의 근원으로 부르는 어법이 여기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문장의 주어는 축복을 주는 여호와이고, 해와 달은 그가 주는 복의 항목으로 내려앉아 있다. 11세기 유대인 주석가 라시는 이 구절을 달빛이 익히는 열매가 따로 있다는 뜻으로도, 땅이 달마다 내놓는 소출이라는 뜻으로도 새길 수 있다고 적었다.
시편 121편 6절은 해가 낮에 치지 못하고 달이 밤에 치지 못하리라고 말한다. 여기 쓰인 동사 나카는 때리거나 죽인다는 뜻이다. 달이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전제가 없으면 성립하지 않는 문장이다. 16세기 주석가 장 칼뱅은 이 구절을 두고 달빛이 몸을 해친다는 당시 민간의 믿음을 시인이 그대로 받아 썼다는 설명이 있다고 적으면서, 실제 원인은 밤의 냉기와 습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느 쪽이든 본문이 달을 해칠 수 있는 힘으로 전제한다는 점은 남는다.
물건으로 남은 흔적도 있다. 히브리어 사하론(שַׂהֲרוֹן)은 '달' 또는 '초승달'을 뜻하는 명사이며, 성경에는 복수형 사하로님으로 세 번 나온다. 사사기 8장 21절과 26절, 이사야 3장 18절이다.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 사전은 이 낱말이 세 자리 모두 비이스라엘인의 장식을 가리킨다고 표시한다.
וַיִּקַּח אֶת־הַשַּׂהֲרֹנִים אֲשֶׁר בְּצַוְּארֵי גְמַלֵּיהֶם׃
와이카흐 에트 하사하로님 아셰르 베차웨레 게말레헴
그리고 그들의 낙타 목에 달린 초승달 장식들을 떼어 가졌다.
사사기 8장 21절 끝부분, 레닌그라드 사본 기반 마소라 본문. 한국어는 직접 옮김.
기드온이 미디안 왕 세바와 살문나를 죽인 뒤 그들의 낙타에서 떼어 낸 물건이다. 26절에서는 왕들이 몸에 걸치고 있던 같은 장식이 전리품 목록에 오른다. 이사야 3장 18절에서는 예루살렘 여인들의 장신구 목록에 들어가는데, 기원전 3세기 이후 그리스어로 옮긴 칠십인역은 이 자리를 '작은 달들'로 번역했다. 번역자가 이 장식의 모양을 달로 이해했다는 뜻이다.
초승달이 달신의 표상이었으므로 이 장식을 부적으로 보는 해석이 나온다. 사하론과 아람 달신 사하르는 첫 자음이 같은 사멕 계열 음이기도 하다. 다만 본문은 이 물건을 장신구라고만 부르며, 종교적 의미가 없는 치레 물건이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앞서 본 텔 하디드의 자개 인장을 보고한 연구진도 그 물건의 성격을 부적 쪽으로 기울여 판단하면서, 왜 하필 그 재료였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적었다. 물건에 새겨진 도상이 곧 소유자의 신앙이라는 추론은 자료가 지탱하는 것보다 크다.
사람 이름에서 달신을 읽어 내는 논증은 확실한 것부터 근거가 희박한 것까지 폭이 넓다. 둘을 섞어 쓰면 글 전체의 신뢰가 무너지므로 나누어 본다.
확실한 쪽은 외국인 이름이다. 느헤미야의 적대자 산발랏(סַנְבַלַּט)은 아카드어 신우발리트, 곧 '신이 생명을 주었다'에서 온 이름이다.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 사전은 이 판정을 19세기 아시리아학자 에버하르트 슈라더에게 돌린다. 산발랏은 엘레판티네 파피루스에서 사마리아 총독으로 확인되며, 두 아들의 이름 들라야와 셀레먀는 여호와의 이름이 들어간 히브리식 이름이다. 이름이 달신 계열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달신을 섬겼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사례다. 열왕기하 18~19장의 아시리아 왕 산헤립도 마찬가지다. 아카드어 신아헤에리바, 곧 '신이 형제들을 대신 주었다'이며, 오라크의 신아시리아 시대 인명 정리에서 달신을 왕명에 넣은 대표 사례로 꼽힌다.
불확실한 쪽은 아브라함 가족이다. 여호수아 24장 2절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를 포함한 조상들이 강 저편에 살면서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명시한다. 창세기 11장 31절은 데라 가족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옮겨 정착했다고 적는다. 그런데 우르와 하란은 둘 다 달신 제의의 중심지였다. 여기까지는 본문과 고고학이 각각 뒷받침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백과사전류가 이 가족의 이름들을 달신과 연결하는 해석을 정리해 실었다. 샤프·헤르초크 신학백과의 「달」 항목이 그런 예다. 나홀은 달신 이름 난나르와, 아브람은 달신의 칭호 '높으신 아버지'와, 사래와 밀가는 달의 여신 칭호와, 라반은 '흰 것'과, 라멕은 달신 신의 다른 이름 람구와 연결했다. 데라는 달이 아닌 아카드어 '가젤'과 연결했는데, 가젤은 금성 여신 이슈타르에게 바쳐진 짐승이다. 사라(공주), 밀가(여왕), 라반(흰)은 히브리어에서도 쓰이는 평범한 낱말이므로, 우연의 일치를 배제할 방법이 이 논증에는 없다. 같은 백과사전이 덧붙인 단서도 남겨 둘 만하다. 달 숭배가 셈족 문화의 더 이른 단계를 대표한다는 주장은 제기되었을 뿐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유보는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지명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여리고의 히브리어 예리호(יְרִיחוֹ)는 달을 뜻하는 야레아흐와 자음이 겹친다. 그래서 서셈족 달신 야리크와 연결하는 제안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히브리어 사전들은 이 이름의 어원을 '불확실'로 표시한다. 브라운·드라이버·브릭스 계열의 정리는 야레아흐에서 왔을 수도 있고 '향기'를 뜻하는 레아흐에서 왔을 수도 있다고만 적는다. 여리고가 종려와 발삼으로 유명했으므로 향기 쪽 설명도 근거가 있다.
시내산은 한 걸음 더 나간 사례다. 시내를 달신 신과 연결하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고, 실제로 유대백과는 현대 학자들의 일반적 견해가 그렇다고 적었다. 그런데 19세기 참고서인 매클린톡·스트롱 성서대사전의 「시내」 항목을 보면 제안된 어원이 여러 갈래다. 게제니우스는 '진흙투성이'로 보았고 크노벨은 '뾰족한, 톱니 모양의'로 보았으며, 시모니스와 힐러는 출애굽기 3장 2절의 떨기나무와 연결해 '여호와의 떨기나무'로 읽었다. 달신과 연결한 것은 뢰디거이고, 에발트와 에버스는 '신 광야에 속한'이라는 뜻으로 보았다. 이 사전은 어원이 이 문제를 푸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자체가 매우 의심스럽다고 결론지었다.
이 대목에서 방법의 문제가 드러난다. 자음 세 개가 겹친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는다. 산발랏과 산헤립이 확실한 것은 이름의 아카드어 원형이 쐐기문자 계약 문서에 같은 형태로 여러 번 나오고, 그 형태가 신의 이름과 동사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여리고와 시내에는 그런 대응 자료가 없다.
가장 구체적인 흔적은 저주 문구에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조약문과 비문에는 위반자에게 신들이 내릴 재앙을 나열하는 저주 목록이 붙는데, 그중 달신 신에게 배정된 항목이 정해져 있었다. 위반자에게 피부병을 내리고 들나귀처럼 광야를 헤매게 한다는 문구다.
한스 울리히 슈타이만스는 2013년 『베르붐 엣 에클레시아』 34권 2호에 실은 논문 「신명기 28장과 텔 타이나트」에서 이 조약과 신명기 28장을 나란히 놓았다. 그가 주목한 대목 가운데 하나가 달신의 저주다. 조약 39절은 신(Sin)에게 배정된 저주이고 내용은 피부병이며, 이어지는 40절은 태양신 샤마시에게 배정된 저주로 내용은 시력 상실이다. 신명기 28장 27절은 여호와가 애굽의 종기와 피부병으로 치리라고 말하고, 29절은 맹인이 어둠 속에서 더듬듯이 대낮에 더듬으리라고 말한다. 병의 종류와 순서가 같고, 문장의 주어가 신에서 저주받는 자로 바뀌는 지점까지 같다. 아시리아 본문에서 저주받은 자가 광야를 헤매고 성경 본문에서 저주받은 자가 더듬거리며 다닌다는 점도 겹친다.
슈타이만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신명기 28장 20~44절이 조약 56절을 직접 본떠 기원전 672년과 622년 사이에 작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는 반론이 있다. 그 자신이 논문에서 밝히듯 카렌 라드너와 크리스토프 코흐는 직접 차용을 부정했고, 양쪽이 공통의 저주 전승을 각각 물려받았다는 설명이 대안으로 제시되어 있다. 성경 본문의 연대를 조약 하나로 확정하는 논증은 이 반론을 넘지 못한다.
다만 연대 논쟁과 무관하게 남는 것이 있다. 여호와가 피부병을 내린다는 저주와 달신이 피부병을 내린다는 저주가 같은 문형이라는 사실이다. 신명기 28장은 아시리아 조약이 달신에게 맡긴 자리에 여호와를 앉힌다.
같은 저주 문구가 다른 경로로도 성경에 들어왔다. 폴 알랭 볼리외는 2007년 논문 「미친 왕 나보니두스」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나보니두스는 신바빌로니아의 마지막 왕으로, 달신 신을 극진히 섬긴 것으로 유명하다. 어머니 아다구피는 하란의 신 신전과 연결된 인물이었고, 그 자신은 하란의 에훌훌 신전을 재건했으며, 십 년 동안 수도 바빌론을 비우고 아라비아 북서부의 오아시스 도시 테이마에 머물렀다. 하란에서 발견된 석비에는 그가 해와 금성과 달신의 상징 앞에 경배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석비들은 1956년에 발견되어 시릴 존 개드가 1958년 『아나톨리안 스터디스』 8권에 「나보니두스의 하란 비문들」로 출간했다.
사해문서 가운데 4Q242, 이른바 「나보니두스의 기도」는 이 왕이 테이마에 있는 동안 지독한 피부병에 칠 년간 시달렸고 유대인의 하나님을 인정한 뒤 나았다는 아람어 이야기다. 다니엘 4장은 같은 뼈대를 느부갓네살에게 옮겨 놓되 병을 짐승처럼 되는 것으로 바꾸었다. 볼리외는 두 이야기의 병이 모두 달신 신의 저주 정식에서 나왔다고 본다. 위반자에게 피부병을 내리고 들나귀처럼 마른 광야로 내보낸다는 그 문구다. 헬레니즘 시대 우루크의 연대기가 우르를 편애하고 마르둑 제의를 모독한 슐기 왕에게 같은 저주를 적용한 사례도 남아 있다. 마르둑을 소홀히 하고 달신을 높인 나보니두스에게 이 전승이 옮겨 붙었고, 바빌로니아의 유대인들이 그것을 다시 고쳐 썼다는 것이 볼리외의 재구성이다.
여기서 흔적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달신은 구약 본문에서 숭배 대상으로는 배제되지만, 그가 내린다고 여겨진 재앙의 문형은 배제되지 않았다. 신명기 28장에서는 여호와의 저주로, 다니엘 4장에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심판으로 다시 쓰였다.
구분해 둘 것이 하나 있다. 예레미야 7장 18절과 44장 17~19절, 25절에 나오는 '하늘의 여왕'은 달신이 아니다. 이 대목에서 여자들은 반죽을 이겨 과자를 굽고 남자와 아이들은 나무와 불을 댄다. 과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카완은 아카드어 카마누에서 온 차용어이며, 카마누는 금성 여신 이슈타르에게 바치던 재에 구운 납작한 과자를 가리킨다. 그래서 하늘의 여왕을 이슈타르, 또는 그에 대응하는 가나안 여신 아스타르테로 보는 해석이 우세하다. 아낫이나 이시스, 아세라를 후보로 드는 견해도 있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후보 가운데 달신은 없다.
다만 두 제의가 무관하지도 않다. 메소포타미아의 신 계보에서 이슈타르는 달신 난나의 딸이고, 태양신 우투와 남매다. 하늘의 군대를 향한 제의는 해와 달과 금성과 별자리를 함께 묶는 체계였고, 열왕기하 23장 5절이 폐지한 대상도 그 묶음 전체다. 달신 숭배를 따로 떼어 다루되, 그것이 별개의 종교였다고 볼 수는 없다.
가장 넓게 퍼져 있으면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흔적은 달력이다. 이스라엘은 달의 삭망 주기로 달(月)을 셌고, 초승달이 처음 보이는 날을 절기로 지켰다. 히브리어로 '새것'을 뜻하는 호데시(חֹדֶשׁ)가 그대로 '초하루'와 '한 달'을 가리키는 낱말이 된 것이 그 증거다.
민수기 28장 11~15절은 매달 초하루에 드릴 제물을 규정한다. 수송아지 둘, 숫양 하나, 일 년 된 어린 양 일곱이며, 안식일 제물인 어린 양 두 마리보다 훨씬 많다. 민수기 10장 10절은 이날 나팔을 불라고 명령한다. 규정에 그치지 않고 생활에도 박혀 있었다. 사무엘상 20장 5절에서 다윗은 초하루에 왕의 상에 앉아야 한다고 말하고, 열왕기하 4장 23절에서 수넴 여인의 남편은 초하루도 안식일도 아닌데 왜 선지자에게 가느냐고 묻는다. 아모스 8장 5절의 상인들은 초하루가 언제 지나가야 곡식을 팔 수 있느냐고 투덜댄다. 이날에 장사를 멈추었다는 뜻이다.
예언자들은 이 절기를 폐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사야 1장 13~14절은 초하루와 안식일과 성회를 견딜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 이유는 절기 자체가 아니라 손에 피가 묻은 채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이다. 호세아 2장 11절은 심판으로 초하루와 안식일이 끊어지리라고 말하며, 이는 그것이 정상 상태였음을 전제한다. 에스겔 46장 6절은 회복될 성전의 초하루 제물을 다시 규정하고, 이사야 66장 23절은 달마다 안식일마다 모든 육체가 와서 경배하리라고 말한다.
이 체계는 이스라엘이 만든 것이 아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주요 기간과 절기는 달의 위상에 맞추어 정해졌고, 초승달과 반달과 보름이 각각 기준이 되었으며, 왕이 제사장과 백성과 함께 관련 의식에 참여했다. 앞서 본 대로 토이어는 우가리트의 달신이 혼인과 다산과 출산, 그리고 죽음과 저승에 연결되었다고 정리했다. 같은 하늘, 같은 주기, 같은 날짜 체계를 두고 이스라엘이 바꾼 것은 하나다. 그날에 제사를 받는 대상이다.
그래서 월삭을 달신 숭배의 잔재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잔재라기보다 공유된 시간 체계이며, 구약이 그것을 물려받으면서 수행한 조작은 대상의 교체다. 창세기 1장이 해와 달을 등잔으로 낮추고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위한 것이라고 규정한 것과 같은 조작이다. 달은 신의 자리에서 내려와 달력의 눈금이 되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구약에는 고대 근동 달신 숭배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흔적은 세 갈래로 묶인다.
첫째는 금지와 규탄이다. 신명기 4장 19절과 17장 2~5절, 욥기 31장 26~28절, 열왕기하 21장과 23장 5절, 예레미야 8장 2절과 19장 13절, 스바냐 1장 5절이 여기 속한다. 근거가 가장 강한 갈래이며, 금지 조항의 존재 자체가 금지 대상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 갈래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하나 더 있다. 이 본문들의 연대가 기원전 8세기 말에서 6세기 사이에 몰려 있고, 이스라엘 땅에서 나온 천체 상징 인장의 대다수도 기원전 730년에서 630년 사이라는 것이다. 규탄이 가장 격렬해진 시기가 숭배가 가장 성행한 시기다.
둘째는 낱말과 사물과 이름이다. 달을 뜻하는 히브리어 야레아흐는 이웃 문화에서 신의 이름이었고, 창세기 1장은 그 낱말을 피해 해와 달을 성소의 등잔을 가리키던 낱말로 불렀다. 신명기 33장 14절은 해와 달의 소출을 짝지어 부르는 옛 어법을 여호와가 주는 복의 목록으로 옮겨 놓았고, 시편 121편 6절은 달이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 초승달 장식 사하로님은 세 번 모두 이스라엘 바깥 사람의 물건으로 나온다. 산발랏과 산헤립은 이름 안에 달신을 담고 있다.
셋째는 저주 문형과 달력이다. 아시리아 조약이 달신에게 배정한 피부병 저주는 신명기 28장에서 여호와의 저주가 되었고, 같은 문형이 나보니두스 전설을 거쳐 다니엘 4장과 사해문서 4Q242에 남았다. 달의 주기로 짜인 절기 체계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제사 대상만 바뀌었다.
확인되지 않는 것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데라와 사래와 밀가와 라반의 이름을 달신 제의와 연결하는 해석은 여호수아 24장 2절의 일반적 진술 위에 이름 풀이를 얹은 추론이며, 그 이름들이 히브리어에서도 평범한 낱말이라는 사실을 넘어서지 못한다. 여리고의 어원은 사전이 불확실로 표시하고, 시내의 어원은 제안된 설명만 대여섯 갈래다. 벳새다 석비의 황소가 달신인지 폭풍신인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자음이 겹친다는 사실만으로 신의 이름을 읽어 내는 논증은, 쐐기문자 계약 문서에 같은 형태가 반복되는 산발랏이나 산헤립의 경우와 같은 층위에 놓일 수 없다.
그래서 이 주제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구약을 이스라엘이 애초부터 달신과 무관했음을 보여 주는 문서로 읽으면 위의 자료 대부분이 설명되지 않는다. 반대로 구약을 달신 숭배의 흔적이 우연히 남은 문서로 읽으면, 그 흔적들이 하나같이 달을 피조물의 자리로 내리는 방향으로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 설명되지 않는다. 자료가 지탱하는 설명은 셋째 쪽이다. 구약은 달신의 언어와 상징과 시간 체계를 물려받은 자리에서 그 대상을 교체하는 작업을 수행했고, 그 작업의 자국이 지금 본문에 남아 있다.
이 논의가 닿는 더 넓은 문제는 종교사의 자료 문제다. 어떤 신앙이 무엇과 싸웠는지는 그 신앙이 남긴 금지 조항에서 읽히는데, 금지 조항은 언제나 싸움이 한창일 때 만들어진다. 그래서 금지의 강도는 그 대상이 성행했음을 가리킨다. 텔 하디드의 쓰레기 구덩이에서 나온 자개 인장이 기원전 7세기 것이라는 사실과, 달 숭배를 가장 격렬하게 규탄하는 본문이 같은 세기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두 자료가 같은 한 시점을 가리킨 사례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은 그 시점에 유다 사회에서 달신 제의가 어느 계층까지 내려갔는가이다. 지붕 위에서 분향했다는 예레미야와 스바냐의 고발은 살림집을 지목하지만, 고발은 규모를 재는 자료가 아니다. 이 물음은 앞으로 나올 가정 단위 유물의 분포로만 좁혀진다.
본문의 히브리어는 레닌그라드 사본에 기초한 마소라 본문에서 가져왔고, 한국어 번역은 직접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