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농경과 함께 생겨났다는 설명은 학계의 가설을 크게 확대한 형태다. 원래 가설이 다루는 대상은 도덕을 감시하는 신이라는 특정 관념으로 좁다. 그 축소된 형태조차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사람이 모여 살면서 서로를 감시할 수 없게 되자 신을 세웠다는 설명이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한곳에 정착하고 인구가 늘자, 낯선 사람끼리 협력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고, 그 문제를 풀려고 종교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논리 자체는 단정하다. 작은 무리에서는 누가 몫을 가로챘는지 모두가 안다. 마을이 커지면 익명성이 생기고 감시가 무너진다. 그러니 사람 대신 감시할 존재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이 설명에는 연대 문제가 있다. 농경은 대략 1만 1천 년 전에 시작됐다. 해부학적 현생 인류는 그보다 훨씬 앞선다. 그리고 초자연적 존재를 상정했다고 볼 만한 물질 흔적은 농경보다 몇 배 오래됐다. 사람이 모여 살기 훨씬 전에 이미 있었던 것을 두고 모여 살아서 생겼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남부의 마로스판케프 일대는 석회암 동굴이 밀집한 지역이고, 그 동굴 벽에 선사시대 그림이 남아 있다. 이 그림들의 연대는 그림 위에 자란 방해석 침전물을 재서 구한다. 그림이 그려진 뒤에 물이 흐르며 탄산칼슘이 얇게 덮이는데, 그 층의 나이를 알면 그림은 적어도 그보다 오래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디 아구스 옥타비아나와 공동 연구자들은 2024년 7월 3일 학술지 『Nature』에 이 방법을 개량한 결과를 실었다. 기존 방식은 침전물 시료를 통째로 녹여 측정했는데, 이러면 서로 다른 시기에 자란 층이 섞여 평균값이 나온다. 연구진은 레이저로 시료 표면을 미세하게 깎아 내며 위치별로 따로 측정하는 방식을 썼다. 층마다 나이를 따로 읽을 수 있으므로 그림에 가장 가까운 층을 골라낼 수 있다.
결과는 기존 연대를 밀어 올렸다. 레앙 불루 시퐁 4 유적의 사냥 장면은 종전 방식으로 최소 4만 3,900년 전이었는데, 새 방식에서는 최소 5만 200년(±2,200년)으로 나왔다. 최소 4,040년 더 오래됐다는 뜻이다. 같은 연구에서 새로 서술된 레앙 카람푸앙 유적의 장면은 최소 5만 3,500년(±2,300년)으로 측정됐고, 논문 제목에 쓰인 보수적 수치는 5만 1,200년이다. 이 장면에는 사람 비슷한 형상 셋과 돼지 한 마리가 함께 그려져 있다.
연대보다 중요한 것은 그림의 내용이다. 술라웨시에서 연대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세 벽화 가운데 레앙 카람푸앙과 레앙 불루 시퐁 4는 사람과 동물의 관계를 그렸고, 레앙 테동에는 돼지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그렸다. 세 장면 모두 형상들이 따로 흩어져 있지 않고 보는 사람이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추론할 수 있게 배치돼 있다. 옥타비아나와 함께 연구한 애덤 브럼은 사람이 이야기를 만든 역사가 5만 년보다 훨씬 길겠지만 말은 화석으로 남지 않으므로 장면을 그린 그림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간접 증거라고 정리했다.
사람 형상 가운데 일부는 사람과 동물의 특징이 섞여 있다. 이런 형상을 반인반수라 부르는데, 실재하지 않는 존재를 그렸다는 뜻이므로 그린 사람이 눈앞에 없는 것을 표상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여기서 종교까지 곧바로 이어 붙이면 지나치다. 확실한 것은 농경이 시작되기 4만 년 전에 이미 사람들이 실재하지 않는 존재를 그리고 그 존재가 등장하는 장면을 구성했다는 사실이다.
고고학 자료는 물건만 남기므로 그 뒤의 생각을 읽기 어렵다. 살아 있는 수렵채집 사회를 직접 조사한 민족지 자료는 사정이 다르다. 20세기까지 인류학자들이 기록한 수렵채집 집단 가운데 초자연적 존재와 그에 관한 의례가 없는 사회는 보고되지 않았다.
만비르 싱은 2018년 학술지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41권에 샤머니즘의 문화 진화를 다룬 논문을 실었다. 샤먼은 무아지경 상태에 들어가 초자연적 존재와 소통한다고 여겨지는 사람이고, 병을 고치거나 사냥의 성패를 점치거나 날씨를 다스리는 일을 맡는다. 싱은 샤머니즘이 기록된 수렵채집 사회 거의 전부에 존재했고, 인류학에서 연령과 성별을 넘어선 최초의 분업, 곧 '최초의 직업'으로 제안되어 왔다고 정리했다.
싱이 재분석한 자료 가운데 하나는 마이클 윙켈만과 더글러스 화이트가 1987년에 만든 초자연적 의례 수행자 목록이다. 이 목록에서 무아지경을 써서 봉사를 제공하는 수행자는 43개 사회에 걸쳐 75명이었다. 싱은 이들이 맡은 일을 영역별로 집계해, 샤먼이 압도적으로 자주 다루는 것이 중요하면서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결과였다고 보고했다. 병의 경과, 사냥의 성패, 날씨처럼 결과가 크고 예측이 안 되는 영역이다.
이 관찰은 종교의 발생 시점을 직접 알려 주지는 않는다. 현대에 관찰된 수렵채집 사회도 나름의 역사를 겪은 동시대 사회이고, 이미 농경 사회와 접촉한 경우가 많다. 구석기 사회가 그대로 남은 표본으로 다룰 수 없다. 그렇더라도 확인되는 사실 하나는 남는다. 농사를 짓지 않고 인구 밀도가 낮으며 익명성이 거의 없는 사회에서도 초자연적 존재와 의례는 예외 없이 관찰됐다. 협력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종교가 없었던 사회는 기록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앞서 정리한 설명은 어디서 왔는가. 학술적 원본은 아라 노렌자얀이 2013년 프린스턴대학출판부에서 낸 『Big Gods: How Religion Transformed Cooperation and Conflict』다. 여기서 다루는 대상은 특정 유형의 신 관념으로 한정된다.
노렌자얀의 주장은 이런 신에 대한 믿음이 문화적으로 진화해 낯선 사람 사이의 협력을 가능하게 했고, 농경이 풀어놓은 대규모 집단의 형성에 기여한 인과 요인의 하나였다고 본다. 다루는 물음은 종교가 언제 생겼는지가 아니다. 이미 있던 종교가 어떤 방향으로 변형됐는지다. 실제로 노렌자얀과 공저자들은 2016년에 이 가설을 다시 정리하면서, 큰 신이 사회 복잡성의 원인이라기보다 복잡해지는 사회와 함께 점진적으로 공진화한 여러 종교적 혁신의 일부라고 표현을 조정했다.
대중 전달 과정에서 대상이 바뀐 셈이다. "특정 유형의 신 관념이 대규모 사회와 함께 퍼졌다"가 "종교가 농경 때문에 생겼다"로 넓어졌다. 앞의 명제는 검증 대상이고 뒤의 명제는 연대와 민족지 양쪽에서 이미 반증된다.
터키 남동부 샨르우르파 인근의 괴베클리 테페는 기원전 10천년기와 9천년기, 토기 이전 신석기 시대에 세워진 기념비적 건축물 유적이다. 유네스코가 세계유산 목록에 올리면서 붙인 설명에 따르면, 이 건축물을 세운 것은 수렵채집 집단이었다. 최대 5.5미터에 이르는 T자 모양 석회암 기둥이 원형과 타원형 구조물을 이루고, 기둥에는 허리띠와 허리옷 같은 의복이 얕은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야생동물이 높고 낮은 부조로 새겨져 있다.
이 유적이 알려진 뒤 20년 가까이 해석을 주도한 것은 발굴을 이끌었던 클라우스 슈미트의 견해였다. 슈미트는 이곳을 순전한 의례 중심지로 보았다. 표준적인 주거 건물이 없고, 화덕이 없으며, 일상적 쓰레기가 초기 발굴 구역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다른 곳에 살던 수렵채집민이 순례하듯 찾아온 제의 장소라고 결론지었다. 농경이 시작되기 전에 대규모 의례 건축이 있었다는 뜻이므로, 종교가 정착의 원인일 수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 해석은 이후 약해졌다. 캐나다 고고학자 테드 배닝은 2011년 「So Fair a House」라는 논문에서, 문제의 구조물이 다른 토기 이전 신석기 유적에도 있는 화려하게 장식된 주거 건물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배닝의 더 넓은 지적은 방법론에 관한 것이었다. 성과 속을 가르는 근대적 구분을 신석기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는 일 자체가 오도일 수 있다고 배닝은 적었다.
발굴 자료도 슈미트 쪽에 불리하게 쌓였다. 유네스코의 등재 설명은 최근 발굴에서 주거 건물로 보이는 비기념비적 구조물의 잔해가 확인됐다고 적는다. 2026년 8월 현재 발굴을 이끄는 네지미 카룰은, 보호구역 북쪽 약 1,500제곱미터 구역에서 올리브나무를 옮긴 뒤 발굴을 시작해 두 번째 점유 단계에 속하는 직사각형 구조물을 노출시켰다고 밝혔다. 이 건물들에는 T자 기둥이 훨씬 적고 내부 배치가 주거용으로 보인다. 카룰은 공동 건축물과 주거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괴베클리 테페를 여러 용도의 건축이 동시에 쓰인 취락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라고 정리했다. 인근 사이부르치에서는 초기 신석기 건물 50채 이상이 확인됐고 대부분 주거용으로, 음식 조리와 공예의 흔적이 함께 나왔다.
그러니 괴베클리 테페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제한된다. "신전이 먼저, 마을이 나중"이라는 서사는 현재 자료로 지탱되지 않는다. 지탱되는 것은 더 소박한 명제다. 농경이 완성되기 전의 집단이 수 톤짜리 석회암 기둥을 깎아 세울 만한 조직력과 동기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노렌자얀의 가설은 역사 자료로 검증할 수 있는 형태를 갖고 있다. 도덕적 신이 사회 복잡성보다 먼저 나타나는지 나중에 나타나는지를 보면 된다. 하비 화이트하우스가 이끄는 연구진이 이 검증을 시도했다.
화이트하우스와 13명의 공저자는 2019년 3월 20일 『Nature』 568권 7751호 226~229쪽에 결과를 실었다. 자료는 세샤트(Seshat)라는 세계사 데이터베이스였다. 이들은 1만 년에 걸친 414개 사회를 대상으로 사회 복잡성을 재는 51개 지표와 도덕적 신을 재는 4개 지표를 코딩했다. 결론은 가설과 반대였다. 도덕적 신은 사회가 복잡해진 뒤에 나타났고, 대신 대규모 인구에 걸쳐 종교 전통을 표준화하는 의례가 도덕적 신보다 먼저 나타났다. 논문은 사회 복잡성의 초기 상승에 중요했던 것이 신앙의 내용보다 의례 관행이었다고 정리했다.
발표 뒤 반론이 들어왔다. 바스티안 베하임과 공저자들은 결측치 처리 방식이 결론을 좌우했다고 지적했다. 어떤 사회에 대해 도덕적 신의 존재 여부가 기록되지 않은 경우, 화이트하우스 연구진은 이를 부재로 코딩했다. 자료가 없는 것과 실제로 없었던 것은 다르므로, 자료가 부족한 이른 시기가 자동으로 '도덕적 신 없음'이 되어 시간 순서가 만들어진다는 반박이었다. 저자들은 2021년 7월 7일 논문을 철회했다. 철회 공지에서 이들은 최선의 증거로 가설을 공정하게 검증하려 했고 심사 과정과 발표 후에 자료와 코드를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화이트하우스와 공저자들은 2022년 학술지 『Religion, Brain & Behavior』에 수정·확장판을 실었다. 결측치 처리의 오류를 고쳤지만 원 논문의 주요 결론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의 보고다. 같은 호에는 7편의 동료 논평과 저자 답변이 함께 실렸다. 피터 터친을 제1저자로 하는 별도 논문도 세샤트 자료로 도덕화 종교의 부상을 설명하는 경쟁 가설들을 검정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가장 야심 찬 역사 검증 시도가 한 번 철회됐고 수정판이 나왔으며 논쟁은 진행 중이다. 이 상태를 결론이 난 것처럼 다루면 어느 쪽으로 다루든 틀린다.
큰 신 가설은 조용한 전제 하나에 기대고 있다. 소규모 사회의 초자연적 존재는 사람의 도덕에 관심이 없다는 전제다. 이 전제가 무너지면 도덕적 신의 등장을 대규모 사회의 산물로 볼 근거가 약해진다.
벤저민 퍼지츠키를 비롯한 연구진은 수렵채집민, 목축민, 원경민, 임금노동자를 포함한 15개 집단 2,228명을 대상으로 두 가지 행동 실험과 면담을 수행했다. 이들은 지역 신이 절도와 살인과 기만을 벌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응답자들이 답할 확률이 우연 수준보다 높다는 결과를 얻었다. 명시적으로 도덕적인 신에 대한 믿음을 통제한 뒤에도 이 효과는 남았다. 별도로 검토한 하드자 수렵채집민 자료에서는 두 신격이 도덕에 관심을 갖는 존재로 나타났고, 선교사와의 직접 접촉으로 설명된다는 근거는 없었다.
코딩 기준 자체를 문제 삼는 지적도 있다. 애런 라이트너와 공저자들은 2022년 학술지 『Evolution and Human Behavior』에 실은 논문에서, 소규모 사회와 도덕적 신의 관계를 다룬 연구 상당수가 표준비교문화표본의 '도덕적 고신' 변수를 대리 지표로 썼다는 점을 짚었다.
라이트너 연구진의 지적은 이 변수의 코딩 기준이 그 신의 권능이나 전지성을 묻지 않고 우주의 창조자이거나 지휘자인지만 묻는다는 것이었다. 창조자가 아니면서 도덕에 깊이 관여하는 신은 이 기준에서 '도덕적 고신 없음'으로 코딩된다. 이들은 도덕적으로 처벌하는 신과 사회 복잡성 사이의 양의 상관이라는 통설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민족지 증거는 소규모 사회에서도 도덕적 신이 흔했다는 쪽을 지지한다고 결론지었다.
지금까지의 논의는 한 가지 사실을 드러낸다. 이 논쟁에서 답을 가르는 것은 자료보다 정의인 경우가 많다.
종교를 전업 사제 계층과 신전과 성문 교리와 표준화된 의례의 묶음으로 정의하면, 종교가 농경 이후에 나타났다는 결론은 검증이 아니라 정의에서 자동으로 나온다. 전업 사제가 있으려면 잉여 생산이 있어야 하고, 신전이 있으려면 정착해야 하며, 성문 교리가 있으려면 문자가 있어야 한다. 이 셋은 모두 농경 이후의 조건이다.
반대로 종교를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관념과 그에 관한 의례로 정의하면, 앞서 본 술라웨시 벽화와 민족지 기록이 모두 자료가 되고 종교는 농경보다 수만 년 앞선다. 두 정의 사이에 사실 문제는 거의 없다. 있는 것은 낱말의 범위 문제다.
이 때문에 "수렵채집 시기에 종교가 있었는가"라는 물음은 그대로는 답할 수 없다. 답하려면 먼저 무엇을 세는지 고정해야 하고, 고정하는 순간 답의 상당 부분이 정해진다.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큰 신 가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경쟁하는 두 갈래는 농경을 전제하지 않는다.
하나는 인지적 부산물 이론이다. 파스칼 부아예가 2001년에 낸 『Religion Explained』와 저스틴 배럿이 2004년에 낸 『Why Would Anyone Believe in God?』이 대표적이다. 사람에게는 움직임의 배후에 행위자를 상정하는 성향이 있다. 풀숲이 바스락거리면 바람보다 짐승을 먼저 떠올린다. 이 성향은 과잉 작동할 때 손해가 작고 과소 작동할 때 손해가 크므로 과잉 쪽으로 치우쳐 있다. 여기에 타인의 마음을 추론하는 능력이 겹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의도를 가진 존재라는 관념이 특별한 장치 없이도 만들어진다. 이 설명에서 종교 관념은 일상 인지가 다른 일을 하다가 남긴 부산물이다.
다른 하나는 값비싼 신호 이론이다. 리처드 소시스와 에릭 브레슬러는 2003년 학술지 『Cross-Cultural Research』 37권 211~239쪽에 실은 논문에서, 19세기 미국의 공동체 83곳이 구성원에게 부과한 제약과 의례 요건을 역사 자료에서 수집했다. 공동체는 모두 공동 노동이라는 집합행동 문제를 풀어야 생존하므로, 의례와 금기가 집단 내 협력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에 적합한 대상이다. 이들은 더 비싼 요건을 부과한 공동체가 더 오래 존속했는지, 그리고 비용과 종교성이 상호작용하는지를 검정했다. 결과는 값비싼 신호 이론의 일부를 지지했다. 소시스가 앞서 2000년에 19세기 미국 공동체 200곳가량을 대상으로 수행한 생존분석에서는 종교 공동체가 세속 공동체보다 생애 주기의 각 시점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두 연구 모두 19세기 미국이라는 한 시대 한 지역의 자료이므로, 여기서 얻은 계수를 다른 시대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두 설명은 양립한다. 부산물 이론은 왜 초자연적 관념이 생기는지를 다루고, 값비싼 신호 이론은 왜 일단 생긴 관념과 의례가 유지되고 퍼지는지를 다룬다. 어느 쪽도 농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시스와 브레슬러의 자료가 보여 주는 것은 기능이지 기원이 아니다. 어떤 제도가 협력에 유용했다는 사실은 그 제도가 왜 유지됐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도 왜 처음 생겼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 구분을 놓치면 기능주의 설명이 기원 설명으로 둔갑한다.
"종교는 농경이 만든 문제를 풀려고 생겼다"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농경보다 4만 년 앞선 술라웨시 벽화가 실재하지 않는 존재가 등장하는 장면을 담고 있고, 기록된 수렵채집 사회 가운데 초자연적 존재와 의례가 없는 곳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농경 이전 집단이 괴베클리 테페의 거대한 기둥을 세웠다. 인구 밀도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설명은 이 세 갈래 자료와 모두 어긋난다.
대상을 좁히면 사정이 달라진다. 도덕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신이라는 특정 관념, 전업 사제와 표준화된 의례를 갖춘 제도 종교가 왜 특정 시점에 퍼졌는가는 검증 가능한 물음이고 그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세샤트 자료를 쓴 검증은 한 번 철회되고 수정판이 나왔다. 소규모 사회의 신이 도덕에 무관심하다는 전제는 하드자 자료와 코딩 기준 비판으로 흔들린다. 어느 쪽으로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현재 상태다.
남는 물음은 둘이다. 하나는 정의의 문제로, 종교를 무엇으로 셀지 정하지 않으면 기원 논쟁은 낱말의 범위를 두고 다투는 일이 된다. 다른 하나는 기능과 기원의 구분이다. 어떤 종교 형태가 대규모 협력에 유용했다는 것을 보이는 일과, 그 형태가 그 유용성 때문에 생겼다는 것을 보이는 일은 별개의 증명이며 지금까지 나온 자료는 앞엣것에 훨씬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