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어와 알파벳 · 1
2026년 9월 12일
히브리어와 아랍어는 친척이다. 그런데 그 친척 관계가 정확히 어떤 모양인지, 두 언어가 어느 지점에서 갈라져 나왔는지를 물으면 답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이 계통도는 100년 넘게 여러 차례 다시 그려졌고, 그때마다 바뀐 것은 자료보다 무엇을 근거로 삼을 것인가라는 기준이었다. 기준이 바뀐 뒤에 드러난 지도 위에서 오늘날의 셈어는 아랍어 한 갈래에 크게 쏠려 있으며, 나머지 갈래는 계통을 재구할 증거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
셈어(Semitic)라는 이름은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아들 셈에서 따온 것으로, 18세기 말 독일 학자들이 붙였다. 이름의 유래가 성경이라는 점에서 짐작되듯 이 용어는 언어학적 분석보다 먼저 만들어졌고, 그 뒤에 내용이 채워졌다.
오늘날 언어학에서 셈어는 최상위 단위가 아니다. 셈어는 아프로아시아어족(Afro-Asiatic)이라는 더 큰 묶음의 한 갈래다. 어족은 하나의 공통 조상 언어에서 갈라져 나온 언어 전체를 가리키는 최상위 단위이고, 어파는 그 안의 하위 갈래다. 영어를 예로 들면 인도유럽어족이 어족이고 게르만어파가 어파다. 셈어가 놓인 자리는 어파 쪽이며, 같은 아프로아시아어족 안에 다섯 갈래가 더 있다.
여섯 갈래 중 다섯이 아프리카에 있고 셈어만 서아시아에 넓게 퍼져 있다. 이 분포 때문에 아프로아시아 조어가 처음 쓰인 곳은 아프리카 북동부였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크리스토퍼 에렛은 홍해의 아프리카 쪽 연안을 후보지로 제시했고, 로저 블렌치는 에티오피아 남서부를 들었다. 다만 어느 쪽도 확정되지 않았고, 이 어족의 나이 추정치도 1만 2천 년 전부터 1만 8천 년 전까지 폭이 넓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아프로아시아어족 자체의 내부 구조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섯 갈래의 분기 순서에 합의가 없고, 오모어파가 이 어족에 속하는지조차 논쟁 중이다. 재구가 충분히 이루어진 갈래는 셈어파와 이집트어파 둘뿐이며, 나머지는 기술된 자료 자체가 부족하다. 셈어 내부의 계통도가 꽤 단단한 것과 대조된다.
셈어의 계보를 다룰 때 자주 섞여 들어오는 것이 문자의 계보다. 오늘날 영어·프랑스어·베트남어·터키어가 쓰는 라틴 문자, 러시아어가 쓰는 키릴 문자,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여러 문자가 모두 셈어 화자들이 만든 한 벌의 기호에서 갈라져 나왔다. 이는 사실이지만 언어의 혈통과는 무관한 사실이다. 문자는 빌려 쓸 수 있고 실제로 끊임없이 빌려 쓰였다. 베트남어가 라틴 문자를 쓴다고 해서 베트남어가 라틴어의 후손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차용어도 마찬가지다. 유럽 언어의 algebra·alcohol·sugar·cotton은 아랍어에서, amen·sabbath·messiah는 히브리어와 아람어에서 성서 번역을 거쳐 들어왔다. 접촉에 의한 어휘 이입이지 계통 관계의 증거가 아니다. 인도유럽어족과 아프로아시아어족을 하나의 상위 단위로 묶는 노스트라트 대어족 가설이 19세기 이래 여러 차례 제기되었으나, 주류 역사비교언어학에서 입증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셈어가 남긴 최초의 기록은 아카드어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어 문헌에 섞여 나오는 아카드어계 인명이 기원전 28세기까지 올라가고, 본격적인 아카드어 문헌은 기원전 25~23세기에 나타난다. 시리아 에블라에서 발굴된 에블라어 문서고는 기원전 24세기다. 이 시점에 이미 동셈어가 다른 갈래와 갈라진 뒤였으므로, 셈조어는 그보다 앞선다.
얼마나 앞서는가를 두고 2009년에 나온 계량적 추정이 자주 인용된다. 앤드루 키친, 크리스토퍼 에렛, 시페라우 아세파, 코니 멀리건이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276권(2703~2710쪽)에 실은 연구다. 이들은 진화생물학에서 쓰던 베이즈 계통 분석을 셈어 어휘 자료에 적용하고, 사멸한 셈어들의 문헌 연대를 표본 시점으로 삼아 언어 변화 속도를 보정했다. 결과는 셈어의 기원을 약 5,750년 전, 곧 기원전 3750년경의 레반트로 잡는 것이었다. 레반트는 오늘날의 시리아·레바논·이스라엘·팔레스타인·요르단에 해당하는 지중해 동안 지역을 가리킨다.
같은 연구는 두 가지를 더 내놓았다. 첫째, 아카드어가 조어에서 가장 먼저 갈라져 나왔다는 가설이 아프리카 기원설을 포함한 경쟁 가설보다 통계적으로 잘 지지된다는 것. 둘째, 에티오피아의 셈어들이 남아라비아에서 아프리카의 뿔로 한 차례 건너간 결과이며, 그 시점은 약 2,800년 전, 곧 기원전 800년경이라는 추정이다. 아랍어의 분기는 약 4,450년 전으로 추정되었고 신뢰 구간은 3,650년 전에서 5,800년 전 사이로 넓게 잡혔다.
이 수치를 인용할 때 함께 밝혀야 할 한계가 있다. 연구진 자신이 명시했듯 이 분석은 알려진 셈어들이 서로 갈라진 시점만 추정할 뿐, 셈어의 조상이 아프로아시아어족에서 언제 어디서 분리되었는지는 추정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 결과는 셈어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반박하지도 확증하지도 않는다. 레반트라는 지목은 셈어 내부 계통도의 뿌리가 놓인 자리에 관한 것이지, 아프로아시아어족에서 갈라져 나온 지점에 관한 것이 아니다. 둘을 구별하지 않으면 이 연구는 실제보다 훨씬 강한 주장을 한 것처럼 읽힌다.
발상지 논쟁 자체는 지금도 열려 있다. 레반트 외에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의 뿔, 사하라, 북아프리카가 후보로 제시되어 있다. 재구된 어휘를 근거로 삼는 논증이 자주 동원되는데, 셈조어에 낙타와 말을 가리키는 어근이 있었다면 그 동물이 늦게 들어온 지역은 후보에서 빠진다는 식이다. 이 방식은 재구된 어휘의 연대를 확정할 수 없다는 약점이 있어 결정적이지 않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의 셈어 분류는 지도를 따라갔다.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어를 동셈어로, 레반트의 히브리어·페니키아어·아람어를 북서셈어로, 아라비아 반도와 에티오피아의 언어들을 남서셈어 또는 남셈어로 묶는 방식이었다. 이 구도에서 아랍어는 남셈어에 들어갔다.
아랍어를 남쪽에 묶은 근거는 세 가지 특징이었다. 첫째는 깨진 복수(broken plural)다. 단어 끝에 접미사를 붙여 복수를 만드는 대신 단어 내부의 모음 배열을 바꾸어 복수를 만드는 방식으로, 아랍어 kalbun(개)의 복수가 kilābun이 되는 것이 그 예다. 둘째는 셈조어의 *p가 f로 바뀐 현상이다. 아랍어 fataḥa는 f로 시작하지만 히브리어 pātaḥ와 아카드어 patāʾum은 p로 시작한다. 셋째는 어근의 첫째와 둘째 자음 사이에 긴 모음을 끼워 넣어 만드는 동사형, 이른바 L형이다. 아랍어 문법서의 제3형 fāʕala가 여기 해당한다.
이 세 특징은 아랍어, 고대 남아라비아어, 현대 남아라비아어, 에티오피아의 셈어에 공통으로 나타났다. 지리적으로도 이 언어들은 남쪽에 몰려 있었다. 하나의 갈래로 묶을 근거는 충분해 보였다.
20세기 후반에 분류 기준이 바뀌었다. 지리적 근접성이나 비슷해 보이는 특징 대신 공유 혁신을 근거로 삼자는 요구였다. 로베르트 헤츠론이 1976년 학술지 Lingua 38권(89~108쪽)에 실은 「유전적 재구의 두 원리」가 이 방법을 셈어학에 명시적으로 도입한 글로 꼽힌다. 헤츠론은 그보다 앞선 1974년과 1975년 논문에서 이미 같은 방향을 밀고 있었다.
이 기준을 적용하자 남셈어를 지탱하던 세 특징이 차례로 무너졌다. 존 휴너가드와 애런 루빈이 2011년 『셈어: 국제 편람』에 실은 분류사 정리에 따르면, 깨진 복수는 혁신이 아니라 보존이었다. 셈조어가 원래 쓰던 복수 형성 방식이 남쪽 언어들에 남았고 북쪽 언어들이 그것을 잃었다. L형도 마찬가지로 셈어 전역에 흔적이 남아 있다. 남쪽에서 새로 만든 형태가 아닌, 다른 언어들이 잃어버린 형태였다. p가 f로 바뀌는 변화는 세계 언어에 아주 흔한 유형이라 계통 판단에 쓸 수 없고, 아라비아와 에티오피아에 함께 나타나는 것은 인접 지역으로 퍼진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세 근거가 모두 빠지자 남셈어라는 묶음은 근거를 잃었다. 혁신은 다른 곳에 있었다.
셈조어의 동사는 어간 안쪽 모음을 바꾸어 두 형태를 구별했다. 완료를 나타내는 yaqtul과 미완료를 나타내는 yaqattal이다. 아카드어는 이 체계를 그대로 유지했다. 서셈어 쪽에서는 다른 일이 일어났다. 서술형 형용사에 대명사 접어를 붙인 구조가 문법화하면서 접미 활용이라는 새 완료형이 생겨났다. 아랍어의 qatala와 qataltu가 그 결과다. 이 새 형태를 만들어낸 것이 서셈어의 공유 혁신이며, 만들지 않은 아카드어와 에블라어가 동셈어로 남는다.
서셈어 안에서 다시 한 갈래가 별도의 혁신을 일으켰다. 기존의 미완료형 yaqattal을 버리고 완료형에 접미를 덧붙인 새 미완료형을 만들었다. 자음으로 끝나는 활용에는 -u를, 모음으로 끝나는 활용에는 -na를 붙여 yaqtulu, yaqtulūna 같은 형태가 되었다.
이 복잡한 혁신을 공유하는 언어는 아랍어, 북서셈어 전체(우가리트어·아람어·히브리어·페니키아어), 그리고 고대 남아라비아어다. 반면 현대 남아라비아어와 에티오피아의 셈어는 옛 형태 yaqattal을 계속 쓴다. 우연히 같은 복잡한 형태를 따로 만들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앞의 언어들은 더 가까운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판단한다. 이 묶음이 중앙셈어다. 아랍어는 이렇게 남쪽에서 가운데로 옮겨졌고, 남은 두 갈래는 공유 혁신이 없어 하나로 묶일 근거를 잃었다. 중앙셈어의 특징 목록은 휴너가드가 2005년 「중앙셈어의 특징」에서 정리했다.
아랍어가 중앙셈어에 속한다는 판단에는 오늘날 이견이 거의 없다. 아랍어 자체를 다른 중앙셈어와 구별하는 특징이 무엇인가는 그보다 늦게 정리되었다. 휴너가드가 2017년 「셈어 맥락 속의 아랍어」에서 열네 가지를 제시했고, 아흐마드 알잘라드가 여기에 다섯 가지를 더했다. 목록에는 셈조어의 1인칭 대명사 두 형태 ʔanā와 ʔanāku 가운데 긴 쪽이 아랍어에서만 흔적 없이 사라진 것, 명사 어미에서 -m 계열이 -n 계열로 통일되어 아랍 문법가들이 탄윈이라 부르는 형태가 된 것, 여성형 어미의 두 이형태 -t와 -at 가운데 -at로 평준화된 것 등이 들어 있다.
위 계통도에서 고대 남아라비아어의 위치는 여전히 논쟁 대상이다. 과거에는 남셈어에 넣었으나 yaqtulu 혁신을 공유한다는 근거로 중앙셈어에 배치하는 견해가 늘었다. 또한 이런 나무 모양 그림 자체가 실제 언어사를 얼마나 반영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인접한 언어들 사이에서 특징이 번져 나가는 현상과 서로 다른 언어가 같은 방향으로 따로 변하는 현상이 흔해서, 나무 모형 대신 물결 모형으로 설명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다. 휴너가드와 루빈의 2011년 글 제목이 「계통과 물결」인 것도 이 긴장을 가리킨다.
계통도에서 위치가 바뀐 것과 실제 세력이 커진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아랍어는 둘이 함께 일어난 드문 경우다.
아랍어라는 낱말이 처음 확인되는 기록은 남이 쓴 문서에 있다. 신아시리아의 왕 살만에세르 3세가 기원전 853년에 세운 쿠르흐 석비에는 아시리아의 레반트 진출에 맞선 연합 세력의 지도자 명단이 올라 있는데, 다마스쿠스의 하다데제르와 이스라엘의 아합 사이에 "아랍인 긴디부"라는 이름이 나온다. 아랍어로 된 문헌 자체는 훨씬 늦게, 그것도 띄엄띄엄 나타난다. 요르단 바이르에서 발견된 고대 북아라비아 문자 명문에 암몬·모압·에돔의 신들에게 바치는 기도가 적혀 있는데, 철기시대 II기로 추정되는 이 짧은 기도문을 빼면 고대 근동의 아랍어를 전하는 자료는 다른 언어로 옮겨 적힌 인명과 신명 몇 개뿐이다.
기원전 1000년기 후반부터 자료가 늘어난다. 요르단과 시리아 남부에 걸쳐 사파이트 문자와 히스마 문자로 새긴 명문이 5만 점 가까이 남아 있고, 여기에 아랍어의 고유 혁신이 대부분 나타난다. 다만 이 문자들은 자음만 적고 내용이 짧고 정형화되어 있어 실제 언어의 다양성을 상당 부분 가린다. 나바테아 문자로 아랍어를 온전히 적은 문헌은 두 점뿐인데, 150년 이전으로 추정되는 엔 아브닷 명문과 328년의 나마라 명문이다. 나마라 명문은 다마스쿠스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세워진 왕의 묘비로, 마르 알카이스라는 이름의 인물의 행적과 사망 연도를 기록했다.
완전히 발달한 아랍 문자로 쓰인 이슬람 이전 명문도 몇 점 있다. 알레포 인근 제베드의 512년 명문, 하우란 지역 자발 우사이스의 528년 명문, 하란의 568년 명문이다. 이 짧은 글들은 언어 자체보다 문자의 진화 과정을 알려 주는 자료에 가깝다.
주목할 것은 이 시기의 아랍어가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사파이트 명문에는 정관사가 네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h-, ʔ-, ʔl-, hn-), 아예 정관사를 쓰지 않는 방언도 있다. 오늘날 표준 아랍어의 ʔal은 정착민의 문자 자료에 주로 나오고 유목민의 명문에는 드물다. 6세기 페트라 파피루스에서는 격 어미가 이미 사라진 상태가 확인된다.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는 언어적으로 균질하지 않았고, 오늘날의 표준 아랍어는 그 다양성 가운데 한 갈래가 종교적·정치적 이유로 위로 올라간 결과다.
오늘날 모어로 쓰이는 셈어는 크게 일곱 갈래로 정리된다. 화자 규모의 격차는 수백 배에 이른다.
| 언어 | 주요 지역 | 규모와 상태 |
|---|---|---|
| 아랍어(방언 전체) | 서아시아·북아프리카 | 모어 화자 수억 명. 셈어 화자의 대부분 |
| 암하라어 | 에티오피아 | 모어 화자 추정치 2,200만~3,400만 명. 제2언어 화자를 더하면 6,000만 명에 가깝다는 집계도 있다 |
| 티그리냐어 |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티그라이 | 추정치가 자료에 따라 600만~1,000만 명으로 갈라진다 |
| 히브리어 | 이스라엘 | 모어 화자 수백만 명. 20세기에 구어로 복원 |
| 몰타어 | 몰타 | 약 50만~57만 명. 유럽연합 공용어 |
| 신아람어 여러 갈래 | 이라크·시리아·튀르키예 동남부와 디아스포라 | 합계 50만 명 안팎 추정. 전 갈래 소멸 위기 |
| 현대 남아라비아어 | 예멘 마흐라·소코트라, 오만 도파르 | 합계 20만 명 안팎 추정. 전 갈래 소멸 위기 |
표의 수치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조사 시기와 기준이 제각각이고, 같은 언어에 대해 자료마다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티그리냐어는 2007년 에티오피아 인구조사를 근거로 440만 명, 에리트레아 쪽 2016년 자료로 310만 명을 잡는 집계가 있는가 하면, 2022~2023년 기준으로 990만 명을 제시하는 집계도 있다. 암하라어도 2,200만 명에서 3,400만 명까지 폭이 넓다. 이런 격차가 생기는 까닭은 집계마다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어 화자만 세는 집계와 제2언어 화자를 더한 집계가 섞여 있고, 근거도 국가 인구조사와 연구자 추정으로 나뉜다. 인구조사 수치는 조사 시점의 자기 신고에 기반하므로 언어 정체성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에서는 실제 사용 인구와 어긋날 수 있고, 연구자 추정치는 표본 규모와 조사 범위가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느 쪽도 셈어 화자 수의 확정값으로 쓸 수 없으며, 기준 연도와 집계 방식을 함께 밝히지 않으면 언어 사이의 비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쏠림의 크기다. 셈어 화자의 절대다수가 아랍어 사용자이고, 그다음 규모인 암하라어와 티그리냐어가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에 집중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합쳐도 한 도시 인구에 미치지 못한다.
현대 남아라비아어는 아랍어의 방언이 아니다. 앞의 계통도에서 보듯 아랍어와는 중앙셈어·남셈어로 갈라지는 별개의 갈래이며, 아랍어 화자가 들어도 알아들을 수 없다. 여섯 언어가 있다. 메흐리어, 소코트라어, 셰흐리어(지발리어 또는 샤흐리어라고도 한다), 하르수시어, 호비오트어, 바트하리어다. 모두 문자 기록 전통이 없는 구어였고, 20세기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기술이 시작되었다.
리즈대학교의 현대 남아라비아어 기록 사업이 제시한 추정치는 다음과 같다. 메흐리어 약 10만 명, 소코트라어 약 5만 명, 셰흐리어 2만~3만 명, 하르수시어와 호비오트어 각각 1,000명 미만, 바트하리어는 유창한 화자가 10명 미만이다. 같은 언어에 대해 다른 집계는 더 큰 수를 제시하기도 한다. 메흐리어의 경우 유네스코는 10만 명, 다른 집계는 11만 5,200명, 또 다른 집계는 18만 명이나 26만 명을 든다. 세 나라 국경에 걸쳐 쓰이는 데다 많은 마흐라인이 이미 아랍어로 옮겨 갔기 때문에 정확한 수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 기록 사업 쪽의 설명이다. 유네스코 위기언어 지도는 메흐리어를 확실한 위기 단계로, 소코트라어와 셰흐리어를 심각한 위기 단계로 분류한다. 오늘날 이 언어들의 화자는 거의 모두 아랍어도 함께 쓴다.
신아람어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아람어는 기원전 9세기부터 문헌에 나타나 신아시리아와 아케메네스 제국의 행정 언어가 되었고 서아시아 전역에서 쓰였다. 그 후손이 오늘날 남아 있으나 화자는 이라크·시리아·이란과 디아스포라에 흩어진 소수 기독교·유대교 공동체에 한정된다. 합쳐서 50만 명 정도로 추산되며, 중동을 떠나 유럽·미국·이스라엘로 이주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튀르키예 남동부 투르 압딘의 투로요는 화자 10만 명 수준으로 집계되고, 이와 가까운 므라흐소는 최근 사멸했다.
여기서 계통 연구와 소멸이 맞물린다. 셈어 연구는 오랫동안 문헌이 풍부한 북서셈어에 자료가 쏠려 있었고, 그 편중은 성서학의 필요에서 나온 역사적 사정이기도 하다. 반대편에서 현대 남아라비아어는 셈조어의 오래된 특징을 보존한 독립 증거로서 값이 큰데, 바로 그 언어들이 지금 가장 빨리 사라지고 있다. 미완료형 yaqattal의 보존 여부가 중앙셈어를 갈라내는 핵심 근거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형태를 지금도 쓰는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계통도를 떠받치던 증거 하나가 문헌 기록이 아닌 상태로 사라진다는 뜻이다. 문자 기록이 없는 언어는 화자가 사라지면 그것으로 끝난다.
셈어는 독립된 어족이 아니다. 아프로아시아어족에 속한 여섯 어파 가운데 하나다. 이 어파의 내부 계통도는 100년 넘게 여러 차례 다시 그려졌는데, 그 변화를 만든 것은 대개 새로 발굴된 문헌보다 무엇을 증거로 인정할 것인가라는 기준이었다. 지리적 인접성과 겉으로 닮은 특징에 기대던 옛 분류는, 조상에게 없던 형태가 새로 생겨나 특정 언어들만 그것을 공유할 때에만 계통의 증거가 된다는 기준 앞에서 재편되었다. 깨진 복수와 L형이 혁신이 아닌 보존이었다는 확인 하나로 남셈어라는 묶음이 사라졌고, 미완료형을 새로 만든 언어들이 중앙셈어로 묶이면서 아랍어의 자리가 남쪽에서 가운데로 옮겨졌다.
같은 기준으로 그린 지도 위에서 현재 상태를 보면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쏠림이다. 셈어 화자의 절대다수가 아랍어 사용자이고, 암하라어와 티그리냐어가 그다음이며, 나머지 갈래는 모두 합쳐도 수십만 명 수준이다. 다른 하나는 그 나머지 갈래가 계통 연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화자 수와 반비례한다는 점이다. 현대 남아라비아어는 셈조어의 옛 동사 체계를 보존한 독립 증거이고, 그 보존 여부가 곧 중앙셈어라는 묶음의 근거다. 화자 1,000명 미만인 언어가 5만 점의 명문보다 특정 논점에서 더 결정적일 수 있다.
남은 물음은 어느 쪽 자료를 얼마나 신뢰할 것인가로 모인다. 셈조어의 연대와 발상지는 계량적 추정이 나온 뒤에도 확정되지 않았고, 아프로아시아어족 단계로 올라가면 분기 순서조차 정해져 있지 않다. 그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는 자료는 두 방향에 있다. 하나는 계속 발굴되는 고대 명문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살아 있는 소수 언어의 기술이다. 앞쪽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지만 뒤쪽은 줄어든다. 오만 도파르에서 바트하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10명 아래로 내려간 상황은, 한 공동체의 문제인 동시에 5,000년 전 언어를 복원하려는 작업이 근거 하나를 잃는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