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어와 알파벳 · 4
2026년 9월 12일
모로코 사람과 이라크 사람이 각자 집에서 쓰는 말로 대화하면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학교에서 배운 표준 아랍어로 바꾸면 소통이 된다. 그런데 그 표준 아랍어를 모어로 쓰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다. 한편 몰타에서는 아랍어에서 갈라져 나온 말이 라틴 문자로 적히고 유럽연합 공용어로 쓰인다. 이스라엘에서는 1,700년 넘게 일상어가 아니었던 언어가 되살아나 모어 화자를 갖게 되었다. 같은 어파에 속한 언어들의 처지가 이렇게 갈라진 이유는 언어 내부의 성질에 있지 않다. 학교와 국가와 종교 제도가 각 언어를 어떻게 다루었는가가 결과를 정했다.
아랍어권의 언어 상황을 기술할 때 표준이 된 개념이 있다. 찰스 퍼거슨이 1959년 학술지 Word 15권 2호(325~340쪽)에 「양층언어」라는 한 낱말짜리 제목으로 발표한 글에서 정리한 개념이다. 퍼거슨은 이 낱말을 프랑스어 diglossie에서 가져왔는데, 그 용어는 아랍어학자 윌리엄 마르세가 1930년에 먼저 썼다.
아랍어에서 H에 해당하는 것은 고전 아랍어를 현대에 맞게 다듬은 표준 아랍어다. 교육·행정·방송·문어에 쓰인다. L에 해당하는 것은 각 지역의 구어 방언으로, 마그레브·이집트·레반트·걸프·이라크 계열로 크게 나뉜다. 가정과 일상 대화, 노래와 영화가 방언의 영역이다.
이 구도에서 나오는 결과가 표준 아랍어의 모어 화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랍어권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기 지역 방언을 모어로 습득하고, 표준 아랍어는 학교에 들어가 배운다. 표준 아랍어를 잘한다는 말은 모어를 잘한다는 뜻보다 교육을 많이 받았다는 뜻에 가깝다. 문해력 격차가 곧바로 언어 능력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다.
방언 사이의 거리도 작지 않다. 발음·어휘·문법 전반에 걸쳐 차이가 있어, 모로코 방언과 이라크 방언은 서로 알아듣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각 방언을 별개의 언어로 볼 것인가라는 물음이 계속 제기된다.
화자 수를 세는 일도 이 구조 때문에 어려워진다. 집계마다 아랍어 화자 수가 크게 다른데, 2억 2,300만 명, 2억 7,400만 명, 3억 6,200만 명, 3억 8,000만 명, 4억 1,100만 명 같은 값이 각각 다른 자료에 등장한다. 무엇을 세는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방언별 모어 화자를 합친 값인지, 표준 아랍어를 구사하는 인구를 센 값인지, 제2언어 사용자를 포함한 값인지에 따라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조사 시점도 2020년에서 2024년까지 걸쳐 있다. 어느 수치를 쓰든 집계 기준과 연도를 함께 밝히지 않으면 다른 언어와 비교할 수 없다.
몰타어는 아랍어의 한 갈래에서 나왔으면서 표준 아랍어라는 지붕 바깥에서 자랐다.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다.
870년경 북아프리카의 아랍 세력이 몰타를 장악했고, 1048년에 아랍어를 쓰는 공동체가 섬에 정착했다. 이들이 가져온 말은 시칠리아와 마그레브 일대에서 쓰이던 아랍어 변종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시쿨로아랍어라 부르며,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시칠리아 토후국에서 쓰였다.
1091년 노르만인이 몰타를 되찾은 뒤에도 주민의 말은 그대로 남았다. 몰타대학교의 조제프 브린캇이 2021년 저서 『몰타어와 다른 언어들: 몰타의 언어사』에서 정리한 바에 따르면, 노르만·슈바벤·앙주·아라곤·카스티야로 이어진 지배자들이 주민의 말에 간섭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시칠리아와 스페인과 판텔레리아에서는 아랍어 변종이 사라졌는데 몰타에서만 살아남았고, 1530년 카를 5세가 섬을 성 요한 기사단에 넘긴 뒤에도 프랑스인·포르투갈인·카탈루냐인이 대부분이던 총장들은 구어에 언어 정책을 적용하지 않았다.
그 사이 몰타어는 이탈리아어와 시칠리아어에서 어휘를 대량으로 받아들였다. 문법 뼈대는 아랍어 그대로 남았다. 표기는 라틴 문자를 쓰되 ż·ċ·ġ·ħ·għ 같은 글자를 더해 몰타어의 소리에 맞추었다. 셈어 가운데 표준 표기가 라틴 문자인 유일한 언어다.
제도적 지위는 20세기에 확보되었다. 1934년에 공용어가 되었고, 몰타가 유럽연합에 가입한 2004년부터 연합의 공용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유럽연합의 모든 법령이 몰타어로 번역된다. 화자는 50만 명 남짓이며, 2011년 몰타 인구조사에서 몰타 태생 시민의 99.6퍼센트가 몰타어를, 91.3퍼센트가 영어를 안다고 답했다. 이탈리아어는 61.3퍼센트, 프랑스어는 21.4퍼센트, 독일어는 5.1퍼센트, 아랍어는 4.3퍼센트였다.
마지막 수치가 이 언어의 위치를 보여준다. 아랍어에서 갈라져 나온 말을 쓰는 사람 대다수가 아랍어를 모른다. 표준 아랍어라는 지붕이 없었으므로 방언이 그대로 표준어이자 문어가 되었고, 라틴 문자를 쓰고 이탈리아어 어휘를 흡수하면서 아랍어 화자가 알아듣기 어려운 언어가 되었다. 같은 어파의 한 갈래가 제도적 조건 하나만 달라도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히브리어는 기원후 2세기 무렵 일상 구어로서는 소멸했다. 다만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전례와 율법 문헌, 랍비들의 서신, 시와 철학 저술에서 계속 쓰였고, 중세를 거치며 어휘가 축적되었다. 각 지역의 유대인 공동체는 그리스어·라틴어·아랍어·라디노·이디시어를 일상어로 쓰면서 히브리어를 문어와 전례어로 유지했다.
19세기 말에 이 언어가 구어로 되살아났다. 널리 알려진 설명은 이 일을 엘리에제르 벤예후다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린다. 1858년 리투아니아 루즈키에서 엘리에제르 페렐만으로 태어난 그는 1881년 오스만 제국 치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예루살렘에 정착했고, 히브리어 신문 『하츠비』와 『메바세레트 치욘』을 창간해 히브리어를 일상에 쓰자고 설득했다. 아들 벤치온(뒷날 이타마르 벤아비)을 히브리어만 들려주며 키워 근 2,000년 만의 첫 모어 화자로 만들었다는 일화도 자주 인용된다. 1890년에는 다비드 옐린과 함께 히브리어 위원회를 세웠고, 이 조직이 1953년 히브리어 아카데미가 되었다.
이 서사는 사실관계에서 크게 틀리지 않으나, 부흥을 가능하게 한 조건을 설명하지 못한다. 조건은 세 가지였다.
첫째, 히브리어가 완전히 죽은 적이 없었다. 전례와 문헌에서 계속 쓰였으므로 어휘와 문법이 살아 있는 상태로 전승되었다. 근대 개념을 가리킬 낱말이 부족했을 뿐이고, 그 부족분은 새로 만들어 채울 수 있었다.
둘째, 공통어가 실제로 필요했다. 이주민의 모어가 이디시어·러시아어·아랍어·라디노·폴란드어로 갈라져 있어 서로 통할 말이 없었다. 히브리어 채택은 이념의 문제인 동시에 실용의 문제였다.
셋째, 학교가 있었다. 벤예후다가 개발한 히브리어로 히브리어를 가르치는 교수법이 20개가 넘는 학교에서 쓰였고, 모든 과목을 히브리어로 가르치는 학교가 늘었다.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 히브리어로 놀면서 모어 화자 세대가 만들어졌다. 언어를 되살린 힘은 설득보다 교실에 있었다.
제도가 결정적이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1913년의 이른바 언어 전쟁이다. 하이파에 세워지던 공과대학 테크니온에서 교수 언어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두고 분쟁이 벌어졌다. 독일 자금으로 설립되는 학교였으므로 후원 기관은 독일어를 요구했고, 히브리어에는 수학과 공학의 전문 용어가 없다는 반론도 있었다. 벤예후다가 반대 진영을 이끌었고 학생과 교사가 수업 거부로 맞섰다. 결과는 히브리어 쪽의 승리였다. 이 결정은 제1차 세계대전 뒤 팔레스타인을 위임 통치한 영국이 아랍어·영어와 함께 히브리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배경이 되었다.
부흥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있다. 현대 히브리어가 성서 히브리어와 같은 언어인가라는 물음이다.
길아드 주커만은 2006년 학술지 Journal of Modern Jewish Studies 5권 1호(57~71쪽)에 실은 글에서,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쓰이는 언어를 셈어와 유럽어의 혼성어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법이 히브리어뿐 아니라 부흥 운동가들의 모어였던 이디시어, 그리고 폴란드어·러시아어·독일어·아랍어·라디노에도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주커만은 이 언어를 히브리어가 아니라 이스라엘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 주장은 폴 웩슬러가 제시한 재어휘화 가설과 구별된다. 재어휘화 가설은 현대 히브리어를 히브리어 어휘를 입은 이디시어로 본다. 주커만은 그 설명을 거부하고 부모가 둘인 혼성화로 설명한다. 어느 쪽이든 현대 히브리어의 음운과 문장 구조에 유럽 언어의 영향이 짙다는 관찰 자체는 널리 받아들여진다. 다만 그것을 계통 분류의 문제로 볼 것인가 접촉에 의한 변화로 볼 것인가에서 견해가 나뉜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셈어들은 아랍어와 히브리어 다음가는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이 경우에도 제도가 결정적이었다.
그으즈어는 악숨 왕국의 언어였고 4세기부터 문헌에 나타난다. 일상어로서는 소멸했으나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전례어로 남아 문자와 문헌 전통을 유지했다. 그 문자에서 갈라진 표기 체계로 오늘날 암하라어와 티그리냐어를 적는다.
암하라어는 에티오피아 제국의 궁정 언어였고 현재 연방 정부의 실무 언어다. 이 지위가 화자 규모를 키웠다. 집계에 따라 모어 화자 2,200만 명에서 3,400만 명 사이로 잡히고, 제2언어 사용자를 더하면 5,800만 명에서 6,000만 명에 이른다는 추정도 있다. 아랍어 다음가는 규모의 셈어다.
티그리냐어의 사정은 달랐다. 1958년 에리트레아가 에티오피아에 병합되는 과정에서 공용어 자리를 암하라어에 내주었다가, 1991년 에리트레아 독립 이후 그 나라의 실무 언어가 되었다. 오랫동안 티그리냐어를 공식 언어로 인정한 나라는 에리트레아뿐이었고, 에티오피아가 연방 차원에서 이 언어를 인정한 것은 2020년이다. 화자 추정치는 600만 명에서 1,000만 명 사이로 갈라진다.
반대편에는 국가를 갖지 못한 언어들이 있다.
아람어는 기원전 9세기부터 문헌에 나타나 신아시리아와 아케메네스 제국의 행정 언어가 되었고, 서아시아 전역에서 쓰였다. 그 후손이 오늘날에도 쓰이지만 화자는 이라크·시리아·이란·튀르키예 동남부에 흩어진 소수 기독교·유대교 공동체에 한정된다. 합쳐서 50만 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튀르키예 남동부 투르 압딘 지역의 투로요는 화자 10만 명 수준으로 집계되며, 시리아 북동부 하사카 주에도 화자가 있다. 이와 가까운 므라흐소는 최근 사멸했다. 아시리아 신아람어와 칼데아 신아람어는 이라크 모술 평원과 쿠르디스탄에서 쓰였으나, 이 지역의 분쟁으로 화자 상당수가 유럽·미국·이스라엘로 떠났다. 미국 뉴저지주 파라무스와 티넥에 투로요 화자 공동체가 있고, 이란 우르미아와 비자르 일대 출신 유대계 신아람어 화자들이 뉴욕주 그레이트넥에 모여 있다. 언어가 여러 대륙으로 흩어지면 세대 간 전승이 끊기기 쉽다.
예멘 동부와 오만 남부의 여섯 언어는 문자 기록 전통 없이 구어로만 전해졌다. 메흐리어, 소코트라어, 셰흐리어, 하르수시어, 호비오트어, 바트하리어다. 리즈대학교의 기록 사업이 제시한 추정치로 메흐리어 약 10만 명, 소코트라어 약 5만 명, 셰흐리어 2만~3만 명이고, 하르수시어와 호비오트어는 각각 1,000명 미만, 바트하리어는 유창한 화자가 10명 미만이다. 같은 언어를 두고 다른 집계가 두 배 넘는 값을 제시하기도 한다. 메흐리어의 경우 유네스코는 10만 명, 다른 집계는 11만 5,200명이나 18만 명이나 26만 명을 든다. 세 나라 국경에 걸쳐 쓰이는 데다 이미 아랍어로 옮겨 간 사람이 많아 정확한 수를 내기 어렵다.
유네스코 위기언어 지도는 메흐리어를 확실한 위기 단계로, 소코트라어와 셰흐리어를 심각한 위기 단계로 분류한다. 오늘날 이 언어들의 화자는 거의 모두 아랍어도 함께 쓴다. 근래 메흐리어 연구센터와 소코트라어 연구센터가 세워져 기록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나, 문자 표기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언어에 교육 제도가 붙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본 언어들을 화자 수로 줄 세우면 아랍어가 압도적이고 암하라어와 티그리냐어가 뒤따르며 나머지는 소수점 아래로 밀린다. 그러나 이 순서는 언어 자체의 성질과 무관하다.
몰타어 화자는 50만 명으로 신아람어 전체와 비슷한 규모다. 그런데 몰타어는 유럽연합 공용어이고 신아람어는 소멸 위기다. 차이를 만든 것은 국가의 유무다. 표준 아랍어는 모어 화자가 한 명도 없지만 25개국의 공용어이고 모든 교육 단계에서 가르쳐진다. 티그리냐어는 화자가 수백만 명인데도 2020년까지 에티오피아 연방 차원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히브리어 부흥이 유일한 사례로 남은 이유도 여기서 설명된다. 죽은 언어가 되살아난 사례가 히브리어뿐인 것은 히브리어에 특별한 성질이 있어서가 아니다. 문헌 전통이 끊기지 않았고, 공통어에 대한 실제 수요가 있었으며, 모든 과목을 그 언어로 가르치는 학교망이 만들어졌고, 뒤이어 국가가 그것을 공용어로 삼았다. 네 조건이 함께 갖추어진 경우가 달리 없었다.
같은 어파에서 갈라져 나온 언어들의 처지가 오늘날 이렇게 다른 이유는 계통도 안에 없다. 아랍어는 종교 경전과 국가 제도가 떠받치는 표준형을 가졌고, 그 대가로 모어 화자가 없는 변종을 학교에서 전 국민에게 가르치는 양층언어 구조를 갖게 되었다. 몰타어는 바로 그 표준형의 압력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방언이 그대로 표준어가 되었고, 라틴 문자와 이탈리아어 어휘를 받아들이며 독립 언어로 자랐다. 히브리어는 문헌 전통과 학교와 국가가 차례로 받쳐 준 끝에 구어로 되살아났다. 신아람어와 현대 남아라비아어는 그 어느 것도 갖지 못했다.
이 대비에서 드러나는 것은 언어의 운명을 정하는 힘이 언어 바깥에 있다는 점이다. 상호 소통 가능성이라는 언어학적 기준으로 보면 아랍어 방언들은 여러 언어이고 몰타어는 그중 하나여야 하지만, 실제 분류는 반대로 되어 있다. 화자 수 50만 명인 언어가 유럽연합 공용어가 되고, 비슷한 규모의 언어가 소멸 직전에 놓이는 차이도 언어 내부에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남은 물음은 기록의 시간표에 걸려 있다. 현대 남아라비아어와 신아람어는 셈조어 재구에 필요한 독립 증거를 지니고 있고, 그 가치는 화자 수와 반비례한다. 두 언어군 모두 문자 기록 전통이 얇거나 없어, 화자가 사라지면 남는 것은 연구자가 그때까지 받아 적어 둔 분량뿐이다. 메흐리어 연구센터와 소코트라어 연구센터가 세워진 것은 최근의 일이고, 바트하리어의 유창한 화자는 이미 10명 아래로 내려갔다. 어떤 언어가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물음은 앞으로도 학교와 국가가 답하겠지만, 사라지는 언어에서 무엇이 기록될 것인가는 다른 시간표 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