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장의 탑에는 대응하는 실물이 있다. 바빌론의 지구라트 에테메난키는 기초부가 발굴되었고, 규격을 적은 점토판과 왕이 새겨진 석비도 남아 있다. 그런데 이 자료들은 탑이 있었는지를 알려 줄 뿐 창세기가 묻는 것에는 답하지 않는다. 본문의 관심은 제국의 자기 서술을 뒤집는 데 있고 건축에는 없다.
창세기 앞부분의 이야기들 가운데 대응하는 실물을 지목할 수 있는 것은 드물다. 에덴도, 홍수도 물리적 대응물이 확인되지 않았다. 바벨탑은 예외에 속한다. 바빌론에 실제로 거대한 탑이 있었고, 그 기초부가 발굴되었으며, 규격을 적은 문서와 모습을 새긴 석비까지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다른 질문을 던지기에 좋은 자리다. 성경의 서술에 대응하는 물건이 실제로 나왔을 때, 그것이 무엇을 결정하고 무엇을 결정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다.
창세기 11장 3절은 짧지만 구체적이다. 사람들이 서로 벽돌을 만들어 단단히 굽자고 말하고, 본문은 그들이 돌 대신 벽돌을, 진흙 대신 역청을 썼다고 덧붙인다.
이 한 줄이 지역을 특정한다. 가나안과 레반트 산지에는 석회암이 흔해서 건축에 돌을 쓴다. 메소포타미아 충적평야에는 채석할 돌이 없고 대신 진흙이 무진장하다. 그래서 그곳의 건축은 진흙 벽돌이고, 큰 건물에는 구운 벽돌을 쓴다. 역청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에서는 천연 역청이 지표로 배어 나오고, 그것을 방수재와 접착제로 쓴다.
본문은 이 차이를 설명하지 않고 그냥 기록한다. 돌 대신 벽돌이라는 표현은 돌을 쓰는 곳에 사는 사람이 다른 지역의 건축 방식을 옮겨 적을 때 나오는 문장이다. 글쓴이가 메소포타미아의 건축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여기서 확인된다.
바빌론의 중심 신전 에사길라 옆에 서 있던 지구라트의 이름은 에테메난키였다. 뜻은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집이다.
규격을 적은 문서가 남아 있다. 지금 루브르에 있는 점토판으로, 기원전 229년에 우루크에서 필사된 사본이며 더 오래된 원본을 옮겼다. 보통 에사길라 토판이라 부르지만 내용의 대부분은 지구라트를 다룬다. 조지 스미스가 1876년에 번역했고, 앤드루 조지가 1992년에 교정본을 다시 냈다.
이 문서는 탑이 일곱 단으로 이루어졌고 전체 높이가 91미터라고 적는다. 바닥은 한 변 91미터의 정사각형이다. 로베르트 콜데바이가 1913년 이후 진행한 발굴에서 기초부가 드러났고 실측값은 91.48미터와 91.66미터였다. 문서의 수치와 발굴의 수치가 맞는다.
여기에 실물 부조가 더해진다. 검은 돌에 새긴 47센티미터 남짓한 석비로, 신바빌로니아 왕의 원뿔형 관을 쓴 인물과 일곱 단의 탑, 그리고 꼭대기 신전의 평면도가 함께 새겨져 있다. 탑 옆의 세 줄짜리 명문은 그것이 바빌론의 에테메난키임을 밝힌다. 아래쪽 세 단의 긴 명문은 느부갓네살 2세의 알려진 비문들과 이어지는 내용이다. 앤드루 조지가 2011년에 간행했다. 이 석비의 출토 경위에 대해서는 논의가 있었고, 올로프 페데르센이 최근 학술지 『Iraq』에 발표한 연구가 이 문제를 다시 다뤘다.
비문에서 왕은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적는다. 옛 왕이 이 신전을 지었으나 꼭대기를 완성하지 못했고, 오랜 시간 사람들이 그것을 버려두었다는 서술이 나온다. 그리고 자신이 전 세계의 나라들을 동원해 공사를 마쳤고 탑의 머리를 하늘에 닿게 올렸다고 적는다.
창세기 11장 4절의 문장과 나란히 놓으면 대응이 선명하다. 성경의 건축자들은 꼭대기가 하늘에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내자고 말한다. 바빌론 왕은 자기가 탑의 머리를 하늘까지 올렸다고 비문에 남긴다. 같은 표현이 한쪽에서는 자랑이고 다른 쪽에서는 죄목이다.
탑의 역사는 여러 차례 끊겼다. 신아시리아의 산헤립이 기원전 689년에 바빌론을 파괴하면서 이 탑도 무너뜨렸고, 신바빌로니아의 나보폴라사르와 느부갓네살 2세가 재건했다. 유다 사람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시기가 바로 느부갓네살 2세의 치세다.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재건된 이 탑을 직접 보았을 가능성이 높고, 왕이 그 공사를 어떻게 선전했는지도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본문이 실제로 공을 들인 지점은 이름이다.
바빌론이라는 지명을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바브일리(bab-ili), 곧 신의 문이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하늘과 땅을 잇는 통로라는 관념이 도시의 이름 안에 들어 있다. 에테메난키라는 신전 이름도 같은 관념을 담는다. 하늘과 땅의 기초라는 뜻이다.
창세기 11장 9절은 이 이름을 다르게 푼다. 야훼가 거기서 온 땅의 말을 섞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한다고 적는다. 히브리어에서 섞다를 뜻하는 어근은 발랄(b-l-l)이다. 바벨과 발랄은 소리가 맞물린다.
עַל־כֵּן קָרָא שְׁמָהּ בָּבֶל כִּי־שָׁם בָּלַל יְהוָה שְׂפַת כָּל־הָאָרֶץ
'al-ken qara' shemah babel ki-sham balal YHWH sefat kol-ha'arets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불렀으니, 야훼가 거기서 온 땅의 말을 섞었기 때문이다.
창세기 11장 9절 앞부분. 히브리어 본문은 웨스트민스터 레닌그라드 사본 전자판. 옮김은 필자.
이 어원 풀이는 언어학적으로 맞지 않는다. 바빌론이라는 지명은 아카드어에서 왔고 히브리어 발랄과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저자가 착각한 것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런 종류의 이름 풀이는 히브리 성경 전체에 걸쳐 반복되는 장치이며, 목적은 이름에 새 뜻을 부여하는 데 있다. 어원을 규명하려는 문장이 아니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제국이 신의 문이라 부르던 도시가 혼란의 도시로 다시 명명된다. 제국이 자랑하던 건축 사업이 하늘에 닿으려는 시도로 서술되고, 제국이 자랑하던 통합이 흩어짐의 원인이 된다. 압도적인 규모의 도시를 마주한 쪽이 그 도시의 자기 서술을 뒤집어 쓰는 방식이다.
언어가 갈라지는 이야기가 창세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메르 서사시 「엔메르카르와 아라타의 왕」에 자주 인용되는 대목이 있다.
우루크의 왕 엔메르카르가 아라타의 왕에게 전령을 보내며 읊게 하는 주문 형식의 구절인데, 누딤무드의 주문이라 불린다. 여기서 수부르와 하마지, 수메르와 아카드와 마르투 땅이 하나의 언어로 엔릴에게 말하는 상태가 서술되고, 에리두의 신 엔키가 사람들의 입에 있는 말을 바꾼다는 문장이 이어진다.
이 대목이 창세기 11장과 비교되어 온 것은 새뮤얼 크레이머 이래 오래된 일이다. 다만 비교하기 전에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이 구절의 뜻이 번역에 따라 갈린다.
이 사실이 비교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다. 창세기와 대응한다고 인용되는 구절이, 읽기에 따라 창세기와 정반대 사건을 서술한다. 언어의 통일을 말하는 구절이라면 병행 사례로 쓸 수 없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좁다. 인류가 한때 하나의 언어를 썼다는 관념이 메소포타미아 문헌에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그 상태의 변화를 신의 행위로 설명한다는 것까지다. 그 변화의 방향이 어느 쪽인지는 문헌학적으로 미결이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에테메난키가 실재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결정하는가.
결정되는 것이 있다. 창세기 11장의 저자가 탑을 상상으로 지어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벽돌과 역청이라는 재료, 하늘에 닿는 꼭대기라는 표현, 온 땅의 사람을 동원하는 공사라는 설정이 모두 실재하는 건축물과 그 건축물을 둘러싼 왕의 선전에 대응한다. 본문이 구체적인 대상을 앞에 두고 쓰였다는 것은 확인된다.
결정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 언어가 그곳에서 갈라졌다는 사건은 확인되지 않으며, 확인할 방법도 없다. 언어학이 재구성하는 어족의 분기는 훨씬 오래되고 훨씬 점진적인 과정이고, 하나의 조어에서 현존 언어 전부가 갈라졌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도 없다. 본문이 말하는 사건과 언어학이 다루는 과정은 서로 대응하지 않는다.
또 하나 결정되지 않는 것은 저자가 에테메난키를 염두에 두었는지 자체다. 대응이 촘촘하므로 그렇게 보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본문은 지구라트라는 낱말을 쓰지 않고 바빌론을 명시적으로 지목하지도 않는다. 도시 이름 바벨은 나오지만 그것이 신바빌로니아의 수도인지, 아니면 더 이른 시기의 도시인지 본문 안에서 확정되지 않는다.
세 층위로 정리된다. 건축 층위에서 창세기 11장의 묘사는 메소포타미아의 재료와 공법에 정확히 대응하며, 바빌론의 에테메난키는 문서로 규격이 남아 있고 기초부가 발굴로 확인되었다. 문서의 수치와 발굴의 실측이 일치하고, 왕이 탑의 머리를 하늘에 올렸다고 적은 비문도 남아 있다. 문학 층위에서 본문이 공을 들인 대목은 이름이다. 신의 문을 뜻하던 도시 이름이 혼란을 뜻하는 이름으로 다시 풀리고, 제국이 자랑하던 통합이 흩어짐으로 뒤집힌다. 비교 층위에서 수메르 문헌의 병행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구절은 번역이 갈려 있어, 그 자체로는 대응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이 사례가 알려 주는 방법론적 교훈이 하나 있다. 성경의 서술에 대응하는 실물이 발굴되는 것과 성경의 서술이 사건 보고임이 확인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에테메난키는 창세기 11장이 실재하는 대상을 앞에 두고 쓰였음을 알려 주지만, 그 본문이 그 대상에 대해 무엇을 주장하는지는 발굴이 아니라 읽기가 결정한다. 벽돌의 치수가 맞는다는 사실에서 언어의 기원에 관한 주장의 참을 끌어낼 수는 없다.
남는 질문은 저자의 위치다. 제국의 건축물을 마주하고 그 이름을 뒤집어 쓴 사람은 그 제국 안에 있었다. 언제 어디서 이 뒤집기가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다른 본문들이 같은 작업을 하고 있는지는 본문의 형성 과정을 따로 확인해야 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