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ities
사람과 가치를 다룬 긴 호흡의 글
파피루스 66의 마르다와 로마서 16장의 유니아 — 성경 본문은 어떻게 복원되며 그 복원은 어디서 흔들리는가
네슬레-알란트 29판에서 요한복음 11장의 각주가 달라진다. 본문은 그대로 두고 각주만 바꾼 결정의 배경에는 200년경 사본 한 장에 남은 지움과 덧씀, 그리고 그것을 두고 갈리는 학계의 판단이 있다.
아담과 하와는 어떤 인물로 쓰였는가 — 이름의 뜻, 두 개의 창조 기사, 그리고 히브리 성경의 침묵
히브리어 본문에서 아담은 정관사가 붙은 보통명사 '그 사람'이고, 하와의 이름은 본문이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고 직접 푼다. 두 사람은 창세기 2·3장 바깥의 히브리 성경에 거의 나오지 않으며, 갈비뼈라는 선택은 히브리어로 설명되지 않고 수메르어로 설명된다.
창세기 3장의 저주를 농경의 시작으로 읽는 해석 — 무엇이 실제로 겹치고 어디서 검증이 끊기는가
가시덤불과 엉겅퀴, 얼굴의 땀, 빵은 경작지의 목록이고, 초기 농경민의 뼈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그러나 에덴 안쪽의 사람은 사냥하지 않고 동산을 경작하며, 본문과 신석기 전환 사이에는 7000년이 넘는 간격이 있다.
열 재앙 이야기는 무엇을 주장하려고 이렇게 짜였는가 — 재앙의 수, 자료층, 창조의 역순, 그리고 '열 신' 대응표의 출처
성경 안에서도 재앙의 수와 순서가 서로 맞지 않는다. 지금의 열 가지 목록은 편집의 산물이고 그 배열은 창세기 1장을 거꾸로 되감으며, 널리 도는 '재앙 대 이집트 신' 대응표는 본문에 없다.
개혁 신학은 근대에 어떻게 응답했는가 — 바빙크의 유기적 서술과 멀러가 뒤집은 정통주의 통설
개혁 신학이 예정론에서 전체를 연역한 메마른 체계라는 설명은 19세기에 만들어졌다. 그 설명을 만든 사람은 슐라이어마허의 제자였고, 원전 조사가 그 상을 무너뜨리는 데 150년이 걸렸다.
바르트는 왜 자연신학을 거부했는가 — 1934년의 결정이 불트만과의 결별과 선택 교리 재구성으로 이어진 경로
신학의 출발점을 인간에게서 계시로 되돌린다는 하나의 결정이 자연신학 거부와 불트만과의 결별과 예정론 재구성을 함께 낳았다. 그 되돌림은 고백의 복원이 아닌 재구성이었다.
불트만의 비신화화는 무엇을 남겼는가 — 케리그마만 남긴 신학과 제자들이 갈라선 자리
불트만은 자유주의의 역사적 예수 탐구를 거부하면서 신앙의 근거를 선포와 결단으로 옮겼다. 하나님을 서술할 언어를 포기한 그 구조는 케리그마만 예외로 남겨두는 데 근거를 주지 못했다.
슐라이어마허는 왜 신앙을 감정에 두었는가 — 계몽주의의 압박과 "왜 하필 기독교인가"라는 미해결 문제
신학의 출발점을 인간의 내면으로 옮기면 계몽주의의 공격은 피할 수 있다. 그 자리에서 기독교가 왜 다른 종교보다 참인지를 말할 언어는 남지 않는다.
구약에 남은 고대 근동 달신 숭배의 흔적 — 금지 조항·낱말·달력에서 확인되는 것과 확인되지 않는 것
달신 숭배의 자취는 구약 곳곳에 있다. 다만 자취마다 근거의 강도가 다르고, 금지 조항이 가장 많아지는 시기는 그 숭배가 가장 성행한 시기와 겹친다.
함무라비 법전과 십계명 비교 연구 — 쟁점은 십계명이 아니라 계약법전이고, 우열이 아니라 문서의 용도다
1902년 함무라비 비석 발견이 만든 우열 비교의 틀과, 그 틀을 바꾼 한 세기의 연구를 따라간다. 알트의 형식 구분, 비석이 시행 법령이었는지를 둘러싼 논쟁, 라이트의 직접 의존설과 그 반론까지.